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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상큼해!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7-31 02:01 게재일 2014-07-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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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교육방송에서 본 한 장면. 예닐곱 살 되는 여자 아이가 엄마 심부름을 가는 중이다. 동심을 몰래 카메라 기법으로 추적하는 프로그램인데 아이의 순간적 언행이 내 눈을 매혹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들길을 혼자 걸어가던 아이는 연신 이맛머리를 쓸어 올리며 `아이, 상큼해!`를 연발한다. 그 말과 행동이 무척 귀여웠다. 그림처럼 파란 하늘엔 구름 몇 점 떠 있고, 들판엔 봄을 재촉하는 바람이 불어온다. 아이는 사랑하는 엄마가 자신을 믿고 과제를 준 것만으로도 설레는 기분이다. 거기다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와주니 금상첨화다. “아이, 상큼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아이가 귀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의 양육 태도 또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동심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다 순수한 것도 아니고, 어린아이의 말이라고 다 때 묻지 않은 것도 아니다. 동심의 말에도 계산이 들어 있을 수 있고, 동심의 혀에서 나오는 말도 영혼을 파괴할 수 있다. 태생적인 기질에 따라 뱉는 말의 형식도 다를 수 있지만 대개 말이란 건 경험과 학습에 의해 좌우된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며 밝은 언어를 쓰는 엄마 곁에 그런 언어를 쓰는 아이가 있을 확률이 높다. 한 점 바람에도`아이, 상큼해!`를 연발할 수 있는 건 아이의 심성이 원래 고운 것도 있겠지만 엄마의 좋은 언어 습관을 보고 배운 덕이기도 하다. 천성적 기질이 곱게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언어 환경에 노출되는 것도 얼마나 축복 받을 일인지.

활용하는 말 틀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맘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가 오해하거나 기분 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말을 잘못 부린 탓이다. 젊은이의 패기와 직설 화법은 어울리는 세트라 쉬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나이테가 늘수록 에둘러 말하되 심지는 적당히 물러져도 좋다. 덕(德)의 시작은 말이다. 말이 정돈되고 순하면 행동도 그리 된다. 순하지 않아야 할 한 순간의 폭발력을 위해서라도 평소 언어 습관은 `아이, 상큼해!`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아도 족하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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