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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스페이드도 필요해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7-29 02:01 게재일 2014-07-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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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설과 성선설 중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어떤 상황을 겪을 때마다 이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데 결론은 언제나 `둘 다 맞다` 쪽이다. 우리의 태생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태어난 이상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겪는데 어떤 나침반을 곁에 두고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의 의지가 결정한다. 성선설이다, 성악설이다 하는 애초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다만 태생적 기질이 강한 사람은 특수한 환경을 만나 독특한 캐릭터를 형성하기도 한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표작인 대실 해밋의`몰타의 매`에서 주인공인 탐정 샘 스페이드가 그렇다. 그는 유쾌한듯 냉혹하며, 친절한듯 능글맞다. 사랑에 호소해 자신의 살인을 위로받고자 하는 의뢰인 브리지드 오쇼네시를 단박에 거절한다. 물론 몰타의 매를 차지하기 위한 브리지드의 악행이 용서 받거나 이해받을 만한 수위는 아니다. 그렇다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브리지드에게 이처럼 냉정하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당신을 경찰에 넘길 생각이에요.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20년 뒤에는 나올 거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사랑스러운 여자예요. 나는 당신을 기다릴 겁니다. 만약 당신이 교수형을 당한다면 나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스페이드는 브리지드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이기적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여자 때문에 얼간이가 되지는 않겠다고 결심한다. 황금 보석으로 치장되었다는 전설 속 몰타의 매, 알고 보면 가짜에 지나지 않는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여자는 살인하고, 등장인물 대부분은 배신을 일삼는다. 탐욕은 그들의 붙박이 친구이기까지 하다. 웃으면 늑대 같은 인상으로 변하는 금발의 사탄 샘 스페이드. 하드보일드 문학의 원조격인 소설의 묘사 장면을 읽으면서 인간은 성악설의 영향에서 자유롭다고는 말 못할 것 같다. 그것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인간적이진 않지만 소위 말하는 쿨한 이미지의 탐정 몇 명쯤은 문학사를 빛낼 캐릭터로 남아 있어도 괜찮지 않은가.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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