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꽃에 물 주듯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7-22 02:01 게재일 2014-07-22 19면
스크랩버튼
오랜 만에 집안 대청소를 했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닦고, 어질러진 책도 정리한다. 방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신간들을 제 자리를 찾아 넣는다. 내보내도 아쉬울 거 없겠다 싶은 책들을 빼낸 자리에, 맘과 달리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새 책들을 바꿔 앉힌다. 책 정리를 할 때마다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같은 책을 두 번 사게 되는 경우도 있고, 산 기억조차 없는데 책꽂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책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 이번 경우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만화판이 전자에 속했고,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후자에 속했다.

몇 년 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만화로도 나왔다는 것을 알고 사들였다. 4권까지 를 읽고는 만족감으로 오래 설렜었?? 거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얼마 전 그 책이 독서 토론 모임의 지정도서로 정해졌을 때, 원글 번역본은 쉽게 내 책꽂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만화본이 통 보이지 않았다. 온 책꽂이를 다 뒤져도 소용없었다. 급기야 내 기억을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좋은 책이니 다른 문우에게 선물했을 거라고 믿었다. 해서 다섯 권으로 늘어난 그 시리즈를 다시 샀다. 한데 이번 정리할 때 먼저 산 네 권이 발견되는 게 아닌가. 이중으로 된 책꽂이 안쪽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사랑의 기술`은 도서관에서 빌려본 것 같은데 내 책방에도 꽂혀 있었다. 슬쩍 기억을 더듬을 겸 훑어보았다. 내용은 가물가물한데 이런 말은 용케도 눈에 띈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린 여자를 본다면, 우리는 그녀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필시 나는 책을 사랑하는 이가 아닌 게다. 책을 사랑한다면 아끼는 그 책이 제 방 책꽂이 어느 위치에 꽂혀 있는지, 또한 언제 무슨 이유로 그 책을 샀는지 정도는 금세 알 것이기 때문이다. 물 주지 않고는 꽃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곁에 두고 아끼지 않으면서 그 책을 사랑한다 할 수 없으렷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