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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쇄신은 상부 명령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등록일 2014-05-26 00:47 게재일 2014-05-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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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이번 세월 호 참사는 공직사회의 무능과 무사안일, 복지부동의 자세, 책임 전가, 상부의 눈치 보기 등 총체적 위기가 초래한 결과물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 사각지대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이를 막지 못한 공직사회의 잘못된 인사와 기강 해이에서 비롯되었다. 세월 호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곳곳을 파보면 아직도 안전과 민생의 사각지대가 도처에 산재해 있다.

중앙정부나 행정 당국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고치겠다는 취지로 내린 지침도 하부에서는 형식적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세월 호 사건은 해경의 안전 지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책임이 크지만 이러한 사례는 비단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 밤길 여성들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마련한 `안전 귀가 서비스 제도`를 예를 들어 본다. 경찰의 대민 업무를 담당 경찰관 298명중 84%인 248명가 성추행이나 음주운전으로 감봉이상의 징계를 받은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음주 운전으로 면허 취소나 정지된 경찰관이 순찰차를 몰았고, 성추행으로 감봉 2개월까지 징계를 받은 경찰관이 여성 안전 귀가 서비스 업무를 담당했다 것이다. 이러한 감사원 보고는 가히 충격적이다 이는 마치 도둑에게 금고 열쇄를 맡기고,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상부의 지침이나 명령이 하부에서 형식만 갖추고 겉돌았던 결과이다.

세월 호 사건만 해도 출동한 해경이 상부의 지시만 기다리고 임기응변의 적극적인 인명 구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은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다. 경찰의 여성 안전 귀가 조치도 상부의 초기의 발상은 그럴듯하지만 경찰하부에서 그 실천 매뉴얼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무사안일과 책임회피 현상은 비단 경찰 조직에만 한하겠는가. 대통령이나 중앙 행정부서의 지침이나 명령이 하부 공무원 조직에 착근하지 못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나라에는 그럴듯한 제도나 정책이 있어도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형식적 보고용으로만 전락하는 데 문제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총체적 위기 극복을 위해`국가 개조`를 내세우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력히 추진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에서 보인 해양경찰의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 자체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대안으로 총리실 직속의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위한 법제화를 서두르고 있다. 대통령은 검찰출신 총리를 임명하여 국가의 법치주의와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공무원 사회가 일시적 충격에 떨고 있지만 태풍의 회오리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복지안동(伏地眼動 )의 공무원이 많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부가 공직 쇄신을 위하여 위로부터의 조직 개편과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직사회의 책임의식의 상실, 무사안일주의는 위로부터의 명령과 조직 개편만으로 성공을 거둘 수 없다. 공직쇄신이 일벌백계주의와 획일적인 통제 정책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경험에서도 입증되었다. 사회정의를 외치며 `청탁 배격`을 공무원 책상위에 걸어 놓았던 전두환 신군부 정권하에서 대통령의 천문학적인 비자금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공직사회의 위로부터 강요된 명령과 조치는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엉뚱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공직쇄신책이 다소 늦더라도 차근히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여야 한다. 공직사회의 채찍 전략뿐 아니라 공직사회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당근전략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통령과 개혁의 주체들은 작은 약속부터 철저히 지켜 공직사회의 신뢰를 회복하여야 한다. 개혁 주체의 신뢰를 회복은 진정한 권위의 상징이며 그것이 개혁의 강력한 추진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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