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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통해 본 우리의 모습

등록일 2014-05-13 02:01 게재일 2014-05-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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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생명을 거의 몽땅 앗아간 사상초유의 여객선참사인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서 우리 현재의 처절한 모습을 보게 된다.

`공무원 마피아`라는 부조리의 관행, 안전의식부재의 적당주의, 실종된 전문의식 및 책임의식, 그리고 공권력 장악력의 부재 등등…. 우리 사회의 부실의 총체적인 결정판을 보는듯 하다. `공무원 마피아`라는 단어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이탈리아의 범죄, 폭력조직은 세계적으로 마약과 도박, 금융 따위에 관련된 거대한 범죄 조직을 형성하면서 마피아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해수부 마피아`집단의 온갖 부조리 관행이 언론에 폭로되고 있지만 그러나 마피아는 해수부에 국한된 건 아니다. 각종 부조리가 터질 때 마다 그뒤엔 공무원 마피아들이 있다. 공무원들이 산하기관을 장악하고 은퇴후 거처로 삼으면서 업체-산하기관-정부기관의 삼각관계에서의 온갖 부조리는 이제 관행처럼 보도되고 있다. 중앙정부 모든 부처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공무원 마피아집단. 정부 산하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장을 온통 퇴직고위 공무원이 차지하고 있는데 정부가 어떻게 그 산하기관과 관련 민간단체를 효율적으로 감독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다. 비전문성으로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 단체를 장악하고 있는 고위 공직자 집단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마피아 집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렇게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안전의식결여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다.일단정지가 지켜지지 않는 유일한 국가, 한국의 자화상이다. 적당주의는 사회곳곳에 만연돼 있다.

해양항만청의 부실 감독으로 여러 차례 안전점검에서 `우수`를 받았지만 형편없는 상태였던 세월호.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는 정원늘리기와 이를 승인하는 비양심성, 사용 불능상태의 구명정, 침몰에 큰 역할을 한 묶지않은 차량과 짐, 운항불안을 무시한 안전불감증 선사의 적당주의 등은 적당주의의 백미였다.

영세화된 선박회사의 부실운영, 선박의 부실관리, 비용절감을 위한 안전방치, 부실한 관리, 위험시 대처능력 부족 등등은 역시 고쳐지지 않는 적당주의가 우리 사회에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세월호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전문의식, 즉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의 결여를 보게 된다.

1천800년대 중반 여자와 어린이를 구명보트에 태우고 장열하게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 영국의 버큰헤드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버큰헤드 정신은 한국에서는 완전히 실종돼 있다. 세월호 참사에는 왜 이같은 정신이 발휘되지 않았던 것일까. 전 세계 선원들이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절대준칙이 유독 한국에서만 무력화된 이유는 아마도 우리사회에 만연된 이기주의와 책임의식 결여로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인간상실은 아마도 함수관계가 있어 보인다. 압축성장에 따른 개인화의 심화가 공동체 의식의 상실로 이어졌다고 사회학자들은 비판한다.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는 너무도 만연 돼 있을지도 모른다. 직업적 책임감 보다는 나만의 안위를 추구하는 책임의식의 결여가 사회 전방 위에 퍼져 있는 것이다. 이같은 책임의식 부재는 매뉴얼 재정비나 처벌조항 강화 등과 같은 하드웨어적 처방으로는 치유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선장도 항해 기술은 배웠을지 몰라도 버큰헤드 같은 직업윤리는 배운 적이 없었을 것이라며 결국 우리 모두가 자기 책임을 지고 자신의 직업윤리를 지키는 사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상실된 공권력의 장악능력도 문제이다.

해경의 헬리콥터가 도착했을떄 갑판에 거의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경은 착륙을 감행해 승객들을 직접 구해내야 하는데도 배를 선회하면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또한 선장과의 무선대화에서도 선장에게 부탁만 했지 직접 배를 장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공권력상실과 장악력 부족은 사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적인 슬픔과 아픔이 온 국가를 덮고 있다. 너무도 슬픈 일이다. 수백명의 어린 생명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졌다.

후진국형 사고는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반성과 대책없이 울음을 반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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