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 중 선상에서 접한 조국의 슬픈 소식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영국 BBC 방송은 한국의 비극을 헤드라인 뉴스로 시간마다 전하고 있다. 이스탄불 시내를 관통하는 말마르 해협에서 배를 같이 타고 가던 외국인들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말레이시아 조난 항공기에 쏠려 있던 세계인의 눈길이 이제 한국 남해안으로 집중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현지를 방문하고 총리가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까지 비치고 있다. 대한민국이 OECD 선진국이 된지 오래 이고, 세계 GDP규모 10위권의 국가가 아니던가. 더구나 우리는 조선 생산 1위국이라고 선전하던 마당에 또 다시 선박 재난을 당했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1970년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사건, 1993년의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훼리호 사건에 이은 이번 선박 침몰 사건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 만연된 `안전 불감증`이 초래한 또 하나의 비극이다. 사고 현장인 맹돌목이 조류가 거센 지역이라고 하지만 이는 자연재해일수 없는 분명한 인재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안전장치도 긴급조치도 없이 20대 3등 항해사에게 배의 핸들을 맡기고 탈출한 선장의 행적, 배가 전복되는데도 학생들에게 이동하지 말고 선실에만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 한대에 25명이 탈 수 있는 구명보트 46개 중 펼쳐진 것은 한 대 뿐인 안전 사각지대, 모두 비극을 자초한 인재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구명보트를 사전 점검 하고 배에 탄 학생들에게 안전 교육이라도 제대로 시키고 선장이 퇴선 명령만 적시에 했더라도 구할 수 있었던 귀중한 생명이 아닌가.
이번 참사는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된 책임의식 부재와 겉만 번드레한 형식주의 사고가 자초한 비극이다. 해상 사고 시 승객부터 구하라는 기본 책임을 방기한 선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으로 부터 12년 된 헌 배를 구입하여 배의 정원을 늘리려고 선실을 개조한 회사, 선박의 정원을 116명이나 증원을 허가해준 행정 당국, 승무원들의 안전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은 업주, 안개가 심한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운항을 허가해준 행정당국, 배의 중심이 흔들릴 정도의 짐을 싣지는 않았는지 모두가 조사과정에서 분명히 밝혀야 할 사안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안전을 우선한다고 `안전 행정부`로 개칭하면서도 사고 재난 본부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정부에 유족뿐 아니라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이러한 후진국형 참사는 반드시 근절될 수는 없을까. 이 나라에서 대형 참사가 있을 때 마다 전국이 요란하다가 장례식 치르고 나면 모두가 잊어버리는데 문제가 있다. 성수대교 사건, 삼풍 백화점 사건, 대구의 지하철 참사, 얼마 전 경주에서 강당이 무너져 귀중한 생명이 희생되었지만 모두 한두 명의 처벌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 나라의 정치도 행정도 언론도 기업도 국민도 모두 건망증 환자처럼 쉽게 잊어버리는데 빠져드는데 비극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매사에 `달기도 잘하고 식기도 잘하는 우리 한국인들의 냄비 체질`과 무관치 않다. 과거를 쉽게 잊어버리는 곳에서 진정한 책임의식이 자랄 수 없다. 매사를 철저히 따지고 기본에 충실하기 보다는 대충 대충 일을 처리하고 위기 상황만 벗어나면 그만이라는 책임 전가 의식이 더욱 문제이다.
현재로서는 귀중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최우선해야 한다. 선장의 구속과 무기 징역형만이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안전 불감증과 책임의식 부재를 철저히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돈만 벌면 된다는 악덕 기업주의 관행을 막는 법적 장치를 강화하여야 한다. 위의 눈치만 보고 책임성과 자발성이 결여된 부처 이기주의와 복지부동의 공직자의 자세는 어찌 할 것인가. 외신은 벌써 박 대통령의 리더십의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반복되는 참사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지 못하는 나라의 백성은 선진국 국민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