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의 전 총리 로타르 데메지에르가 서울의 리더십 콘퍼런스에 참석한다. 그는 1990년 동독 최초이자 마지막 자유선거에서 승리하여 총리가 되었다. 기독민주당(CDU) 당수로서 `베를린 장벽의 해체와 양독 통일`이라는 공약을 내세워 승리한 것이다. 북한 땅에서 이러한 자유선거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 동독에서는 이러한 선거가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한국 방문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통일 관련 입장 표명에는 우리가 새겨 들어야할 대목이 많다.
그는 한반도 통일은 남한이 아닌 북한주민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다소 이상한 주장을 했다. 우리는 흔히들 통일의 주체는 분명 남한이 주도하고 통일의 방식도 자유선거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오래된 꿈이지만 북한의 체제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한반도의 통일 역시 독일처럼 2천500만 북한 주민들의 통일의 열망이 표출될 때 급물살을 탈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잘살 수 있고, 그것이 자손만대의 행복을 보증함을 분명히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가 인륜과 상식에 반하는 북한 체제이지만 북한 주민들을 개혁 개방으로 꾸준히 유도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독일이 통일되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강한 독일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사실 독일이 오늘날 EU의 최강국이 되고 게르만의 자존심을 회복한 것은 통일이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이다. 통일 독일은 분단 시 상호 견제에 쓰던 소모적인 분단 비용을 투자적인 생산비용으로 전환한 결과이다. 분단국 통일의 당위성 중 현실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는 대목이다.
그의 주장 중 우리가 가장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통일의 외교적 접근 방식이다. 독일이나 한반도의 분단이 2차 대전 후 전후 청산과정의 결과이기에 통일도 주변 4강의 합의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통일 직전인 1990년 미·영·불·소 4개국과 동서독 대표들은 독일 통합 문제에 관한 모스크바 합의에 서명하였다. 우리도 한반도 주변 4강인 미·일·중·러, 남북한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하여 하나의 합의문이 작성되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고, 미국과 러시아 역시 자기들의 영향력하의 통일을 바랄 뿐이다. 이를 위한 6자 회담 등 꾸준한 통일 외교를 펼쳐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더하여 그의 충고 중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정책 덕목이 하나 더 있다. 그는 서독이 동독에 대해서 일관성 있는 동방 정책을 추진했듯이 남한의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의 대북 정책은 수시로 변하고 국내의 정치용으로 이용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거기에는 남북 간의 약속을 수시로 방기한 북한당국의 책임이 더 크다. 이 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 정책을 `잃어버린 10년`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 신뢰 프로세스라는 대북구상에는 결국 과거의 대북 화해와 접근이라는 정책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이번 통일 준비위원회의 새로운 구상에는 대북 교류 협력이라는 과거의 정책이 포함되어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반도 통일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성경의 말씀처럼 통일의 메시아가 오는 시기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분단 70년이 흐른 시점에서 남북한의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나 버렸다.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입장이 조금씩 변하고 우리의 경제력도 단군 이래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보다 큰 `통일 대국`건설을 향한 일관성과 실효성 있는 대북 정책구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통일의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며 민족 통일의 희망을 걸어 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