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안전사고로 인해 아까운 젊은이들이 떠났다.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이지만 이번 사고는 특히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여러명 희생됐기에 너무도 아깝고 애절한 사건이다.
언제까지 아까운 젊음과 생명을 희생시켜야 하나?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에서 체육관이 무너져 신입생 환영 행사를 하던 대학생들 여러명이 희생된 사건은 지나간 우리 역사의 안전사고를 되돌아 보게 된다.
안전사고의 효시였던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는 한국 날림공사의 대명사였다.
아파트가 무너진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창피스러웠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1년 뒤 대연각 화재가 일어났다. 화재에 대한 대비책이 전무해 수많은 생명들이 그냥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건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는 이 사건이 신기하게 느껴졌는지 이를 주제로 `타워링`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히트를 쳤고 한국의 안전불감증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후 크고 작은 수많은 안전사고가 있었지만 90년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면서 수백명의 아까운 생명을 잃은 사건은 해외에 토픽감으로 오래 오래 회자되고 있다.
한국의 적당주의와 날림공사. 그리고 재해에 대한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한국은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전세계에 떨치고 있다.
항상 사건이 터지면 “천재냐? 인재냐?”라는 것으로 격론을 벌인다. 그러나 그러한 토론이 왜 필요한가?
실제로 안전사고에서 천재는 거의 없다. 모든 재해는 철저한 대비가 부족한 인재일 뿐이다.
필자도 인재 희생자의 한가족이다.
2003년은 안전사고 최악의 해였다. 2월의 대구지하철 화재와 9월의 태풍 매미로 인하여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개의 재난으로 필자는 사랑하는 세 사람을 떠나 보냈다. 대구지하철에서는 아끼던 제자가 희생됐고 태풍매미 때에는 그토록 애지중지 키웠던 갓 대학을 졸업한 큰딸 아이와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남자친구를 한꺼번에 하늘로 보냈다. 그 고통과 슬픔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희생된 부모들의 눈물과 슬픔을 TV로 보면서 10여년전에 겪었던 고통과 아직도 진행형인 슬픔을 회상하면서 이 한국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언제까지 젊음을 희생시킬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사고를 당한 부모와 가족들은 평생을 슬픔과 고통속에 살아가게 된다. 그건 천재가 결코 아니며 인재일 뿐이다.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건은 예견된 사건이었다. 폭설이 가건물지붕에 쌓이면서 수십t의 무게가 지붕을 누르는 상황에서 어떠한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제설작업을 하지 않은채 대여를 한 리조트의 안전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도 안전예방 조치가 충분하지 않았다. 구조적으로 붕괴될만한 조짐이 보여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구지하철은 지하철의 의자등 재료와 탈출구등이 안전 무방비 상태였다.
태풍 역사상 50년대 사라호 태풍이후 최대라고 하는 태풍 매미가 다가오는데도 마산지역의 대비는 전무했다. 부산지역이 한 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은 것을 보면 대비와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되며 이러한 재난이 인재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인재를 당하고 또한 아까운 젊음과 생명을 떠나 보내야 하는것인가? 남아있는 가족과 친지들의 고통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 것인가?
아까운 젊음들 언제까지 이렇게 우리의 부주의와 안전불감증의 인재로 인해 보내야 하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꿈을 어른들의 부주의로 짓밟아서는 안된다. 정말 우리 사회는 변해야 한다.
일류국가로 가는 길은 국민소득으로 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다. 안전에 대한 대비책과 안전의식도 일류국가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