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을 지나면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해빙 될듯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퍽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금강산의 이산가족 만남을 약속대로 추진하고 꼬여진 남북 관계를 지속적인 대화로서 풀자는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6년간 남북은 공히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정책상의 갈등과 고민을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이야 말로 남북이 정책적 결단을 통해 민족 공존공영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할 시점이다. 여기에는 남북 공히 내부적으로 정책적 결단의 어려움이 따른다.
미국의 대외 정책 결정에는 전통적으로 매파와 비둘기파가 대립했는데 우리의 대북 정책 결정 과정에도 마찬가지다. 매파는 문자 그대로 대북 압박정책이나 강압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정책적 의지와 원칙을 고수하자는 입장이다. 이들은 북한 당국은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이기에 협상보다는 강제나 무력을 통해 거칠게 다루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비둘기파는 비록 북한이 믿을 수 없고 껄끄러운 대상이지만 대화와 협상을 통해 그들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입장에는 모두 장단점이 있고 이해득실이 따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포용 정책의 기저에는 비둘기파들의 주장이 적극 반영되어 있었다. 정부는 대북 협상 과정에서 `상호주의 원칙`까지 포기하면서 양보하고 상당한 대북 지원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 결과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되었지만 북한 당국의 근본적인 정책 변화는 유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국제적 여론 까지 무시하고 두 차례의 해상 도발, 미사일과 핵실험만을 강행해 버렸다. 이에 보수적인 여론을 등에 업은 매파들은 대북 `퍼주기`정책은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고 질타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부터 대북 강경 정책을 구사하였다.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비핵, 개방, 3000` 정책을 제시하였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된 체제로 전환하면 북한 소득 3천불을 보장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름은 `상생 번영 정책`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었지만 일종의 대북 강경 봉쇄 정책임엔 틀림이 없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저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는 압박 정책이라 절대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바 있다. 당시 독일 학술회의에서 만난 북한의 학자는 민간인인 나에게 까지 거칠게 항의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천안 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 사건은 정부의 5·24 조치로 연결되어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 그간의 대북 매파와 비둘기파의 정책을 교훈삼아 새로운 남북 협상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공약으로 제시한 DMZ 평화 공원 구상도 거대한 유라시아 프로젝트도 원천적으로 구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이나 미국과의 평화 협정 구상도 대남관계 개선 없는 입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말로 남북 공히 남북관계 돌파구를 위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보수 정권하에서 매파의 논리는 돋보여 정책의 우선순위를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이 나라의 대북 정책 라인은 대부분 매파들이 장악하고 있기에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박근혜 정부는 과거 비둘기파가 쌓아온 경륜과 노하우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실 통일 관련 정책 부서의 테크노크라트뿐 아니라 학계에도 비둘기파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원칙 있는 신뢰 프로세스`도 매파 적 압박 정책만으로 성공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매파의 대북 정책 원칙과 비둘기파의 유연성이 적절히 조화되어야 모처럼의 이어진 남북 관계가 다시 활로를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