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中관료 부패를 보며 중국의 제자를 생각한다

등록일 2014-01-27 02:01 게재일 2014-01-27 19면
스크랩버튼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10여 년 전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을 지도한 적이 있다. 그는 조선족 출신으로 중국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나이 40이 넘어 우리 대학에 늦깎이 유학을 온 것이다. 당시 그의 부인은 `조선어학`연구를 위해 북한 김일성대학으로 유학가고, 그의 외아들 역시 몽고어를 공부하기 위해 내몽고에 가 있다니 그의 가족은 남북과 동서로 갈라져 있는 셈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 유학이 그리 쉽지 않는 터인데 한국행 유학을 택한 그의 열정과 의지가 가상스러웠다. 그의 조부 때 남만주 땅에 이주하였으며 가족이 어렵게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가끔 씩 한 적이 있다.

그는 박사 학위 과정 중 논문 주제 선정문제로 여러 날 고민한 적이 있다. 지도교수인 나는 그에게 본인이 가장 쓰고 싶은 주제로 논문을 쓰도록 자주 권했다. 논문은 경험상 지도교수가 주제를 지정해주는 것보다 학생 스스로 주제를 잡는 것이 문제의식이 분명한 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공산당 간부 출신인 그는 어느 날 중국 당 관료의 부패 문제로 논문을 쓰겠다고 제의하였다. 의외였지만 나는 그대로 승낙하였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학자가 반당, 반체제적 논문을 쓰면 귀국도 못할 것 같아 방학 중 중국에 가서 당의 허락을 받고 오라고 지시하였다. 마침 당시 후진타오 정권이 중국의 부패 척결의지를 표명한 시점이라 무난히 당의 허락을 받아 이 논문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이 논문의 작성 과정에서 그는 무척 고생하였다. 나는 한국의 부패 분야의 논문 뿐 아니라 외국의 부패 관련 자료를 충분히 수집하여 중국의 관료 부패 방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논문을 쓰도록 주문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는 식사자리에서 소주 기운을 빌려 논문을 도저히 쓸 수 없어 내일 바로 귀국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였다. 나는 그가 귀국한다하니 내심 서운하기도하고, 미운 마음도 들었지만 교육상 만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날 아침 일찍 나의 연구실로 찾아와 자신의 어제 저녁의 경솔함을 정중히 사과하였다. 그 후 그는 다시 이를 악물고 논문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학위 논문은 결국 심사위원들의 칭찬을 받으면서 무사히 통과하였다. 다행히도 그의 논문은 한국 부패학회의 그해 우수 논문상으로 선정되어 상금까지 수령하였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 시진핑이 `파리든 호랑이든 구분 없이 부패를 척결 하겠다`고 선언한지 얼마 되지 않는데 최고위층의 부패 문제가 다시 폭로되고 있다. `파리`에 해당되는 중국 하위직 관료들은 뇌물로 돈을 긁어모으고, `호랑이`라는 거물급은 대형프로젝트를 통해 거액을 챙기고 있다. 오늘 언론에는 최고 지도자 시진핑의 매형, 전 총서기 후진타오의 사촌, 덩사오핑의 사위, 서민 총리 원자바오의 아들 딸 등 고위층 간부 자녀의 수천조원의 자금 유출 문제가 제기 되었다. 중국인들이 비아냥대는 `권력과 돈`을 맞바꾸는 권전교역(權錢交易) 현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 모든 부패의 근원은 견제장치 없는 최고위층의 권력 독점 결과이며, 곳곳에 퍼져있는 중국 특유의 `꽌시(關係)문화`의 부작용이다.

오늘 아침 언론에 보도된 중국 당 관료의 부패현상을 접하면서 멀리 연길에 있는 옛 제자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중국 여행길에 오랜만에 잠시 만난 적이 있다. 이미 그는 `중국 관료 부패`에 관한 단행본까지 출판하였고, 벌써 대학의 정교수로서 승진되어 있었다. 우리의 리더십에 해당되는 영도학(領導學)강의에 열중하고, 당 간부 승진 시험의 출제위원이 될 정도로 중국에서 인정받는 학자가 되어 있었다. 그가 학자로서 중국 관료 부패에 대해 어떤 처방전을 가지고 있을까. 오늘은 메일이라도 보내볼 작정이다.

시론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