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아시아 빈민을 돕기 위한 강연 때 첫 머리에서 잘 던지는 말이다. 세계적인 자선재단인 영국의 CAF(자선지원재단)가 최근 발표한 세계기부지수(2013년) 평가를 보면 한국은 조사대상 146개국 가운데 45위였다. 2010년 82위, 2011년 57위보다는 올라갔지만 우리보다 경제수준이나 국민소득이 한참 뒤진 태국(9위) 스리랑카(8위)보다 떨어져 있다. 더욱이 전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력에 비하면 나눔이 일상화되지 못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기부를 통해서만 따뜻한 자본주의가 성립되고 사회가 건강해 질 수 있다. 또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는가하면 부모의 기부는 자녀교육의 절대 덕목이기도 하다.
2012년 한국인의 평균 기부액은 19만9천원. 두해 전 16만7천원에 비해 20%쯤 늘어났으며 봉사활동 참여 시간도 같은 기간의 24.7시간에서 25.1시간으로, 참여 횟수는 7.1회에서 7.6회로 조금씩이나마 늘었다. 국민 한사람이 3.3건에 해당되는 물품 기부나 자원봉사 평균시간(통계청 2012년 5월~2013년 5월)은 25시간으로 늘어나긴 했으나 인구수에 비하면 무관심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기부 환경은 현금기부에서 국제로타리처럼 유증(유산기부) 및 재능기부, 생명기부 등으로 그 영역을 서서히 넓혀가고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인의 기부는 GDP 대비 0.8%이다. 미국의 2.2%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그동안 앞서갔던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국가들을 추월했거나 바짝 좇고 있다.
필자가 자원봉사를 하는 한국로타리 회원들의 경우 지난해 1천200만달러를 기부, 미국 일본에 이어 3위를 하는 기부 강국이 됐다. 특히 3630지구(경북·총재 신두희) 회원들이 163만달러를 기부해서 한국 1위, 세계 6위를 차지했다.
연말연시는 나눔과 기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이다. 우리의 경우 `기부=착한사람`이런 등식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어 오히려 기부자가 불편을 느낄 경우가 많다. 잠자듯 자연스러운 기부문화, 사회공헌이라기 보다는 이웃을 사랑을 실천하는 정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처럼 어릴 때부터 교육과정에서 나눔을 배우고 체험이 절대 덕목이다. 대학생은 고교생을, 고교생은 중학생을, 초등학생에게 기부의 맛을 경험하게 하는 것. 자원봉사증명서를 요구하는 우리학교의 봉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부자들이 거액의 기부금을 던지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다. 최근 소아마비가 다시 창궐한 소말리아등 아프리카 뿔 지역과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나이지리아 등에서 1%쯤 남아 인류를 괴롭히는 소아마비 100% 박멸을 위해 4억500만달러를 들고 국제로타리를 찾은 빌 게이츠는 “나눌 수 있는 것부터가 특권”이라고 말했다.
철강왕 카네기는 “통장에 많은 돈을 남기고 죽는 사람처럼 치욕적인 인생은 없다”고 생전에 늘 말했었다. 1901년 은퇴한 카네기는 교육·문화 분야 발전을 위해 3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부었는데 당시 일본의 국가 예산이 1억3천달러이었으니 그 돈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카네기가 1919년 죽었을 때 그의 통장엔 2천500달러뿐이었다.
워런 버핏은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다” “열정은 성공의 열쇠이다. 그러나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다”를 기본정신으로 삼았다.
석유왕 록펠러 역시 손꼽히는 자선가다. 한때나마 미국에서 가장 `혐오스런 인물`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을 만큼 부를 쌓는데 전념했었다.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55살부터 자선사업에 뛰어들어 5억달러 이상을 기부하는 등 `위대한 자선가`로 미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게 됐다.
버핏 처럼 `성공의 완성이 나눔`이라면 `행복은 나눔에서 얻는 감동` 그 자체이다. 지난해 봄 세계적 정신의학자 짐 해리슨이 쓴 책 `신이 답하지 못하는 몇 가지 이유`에서의 내용을 보면 봉사 현장에 나선 자원봉사자의 뇌파 검사에서 자원봉사자가 일으키는 감동 뇌파는 일반인에 비해 크게 요동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봉사로 얻는 행복을 증명한 실험이었다.
2014년 갑오년은 우리주변을 보살피는 따뜻한 일들이 새해 아침 바다 햇살처럼 쏟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