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서 또 한해가 저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국 정치도 또 한해의 막을 내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위한 인사 청문회로 시작한 정국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던 `격돌의 정치`의 연속 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 시 약속했던 `국민 행복시대` `대통합 정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없고 국민 불안과 분열의 정치로 치닫고 말았으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2013년 한국 정치의 주요 쟁점은 대선 때부터 제기된 노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윤창중의 성추행, 국정원 댓글,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이석기의 RO 사건, 채동욱 검찰 총장 퇴진 사건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돌이켜 보면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없고, 아직도 상처만 그대로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여야 모두에게 잃은 것뿐인 우리의 얼룩진 정치의 모습이다. 이러한 비생산적인 정치, 상처뿐인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면서 그래도 우리는 희망의 정치라는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어느 정치학자는 2013년 한국 정치를 `정치`라는 두자 성어로 풀이하였다.`정(政)은 정신없이 치고받은, 치(治)는 치졸한 모습만 보인 정치`라고 풍자하고 있다. 매우 그럴듯한 표현이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여야의 정쟁은 정신 나간 듯이 치고받았지만 유치하고 치졸한 정쟁만을 연출하였을 뿐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지난 한 해의 한국 정치는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고 약자에게 희망을 주는 생산적인 정치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여기에 유권자인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나라 정치가 이렇게 역주행한데는 여야 지도부 공히 지도력의 부재에 원천적인 책임이 있다. 여야는 상호 책임을 전가하지만 그 책임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여당 지도부는 정치적 쟁점에 관해 독자적인 지도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않고 청와대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야당 역시 취약한 리더십을 정부나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 비난과 공격으로 치달아 `천막 정치`라는 강경한 모습만 부각하였다. 이로 인해 여당은 대통령의 한마디가 정치적 가이드라인이 되고, 야당은 사사건건 여당의 발목 잡기에만 골몰 한듯하다.
지난 1년 동안 여야는 정치적 갈등을 풀기 위한 진정한 협상력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2013년 우리 정치의 얼룩지고 굴절된 모습이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 여당은 언제나 법과 원칙을 내세우고 강경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당내 보수 강경세력은 득세할 수밖에 없고, 정치적 안정을 명분으로 더욱 공안 통치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저항하는 야당 세력은 더욱 폭로 정치, 투쟁 정치, 거리의 정치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프랑스 혁명사에서 자코뱅 식 급진 개혁과 그에 따른 떼레미도르 반동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항상 되새겨 보아야 한다. 분열과 갈등이 역사의 반동을 초래하고 그것이 독재자 나폴레옹의 통치를 가능케 하였음을 말이다.
새해에는 우리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갈등으로 얼룩진 분열의 정치를 상생의 정치로 바꾸어 가야 한다. 여기에는 여야 정치인들의 각성이 어느 때 보다 요구된다. 여야의 새로운 리더십은 최소한 국민을 불안케 하는 정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여기에 국정의 책임자인 대통령의 대통합의 리더십이 시급히 요구된다. 법과 원칙에 따른 소신의 정치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능사가 아님은 우리의 정치 현실이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새해에는 1년 전의 선거의 후유증을 말끔히 청산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화해의 정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치권이 상생의 정치를 실천할 때 48:51로 갈라진 유권자들의 응어리도 점차 풀려갈 것이다. 새해에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로운 희망의 정치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