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날쌔고 용감해 전쟁에서는 훌륭한 병기로 이용됐고 평시에는 농사일을 돕는 동물로 사람과는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또 성질이 진취적이고 의기양양한 모습을 하고 있어 매우 신성한 동물로도 여겼다.
이처럼 박력과 생동감을 상징하는 말은 쭉 뻗은 체형으로 살아있는 생명력, 빠른 순발력, 힘찬 말굽과 거침없는 숨소리를 가져 매사 강력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해 내년에는 국운이 왕성하게 되고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을 예견하는 덕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러한 말이 지닌 상징성은 `한국정신문화수도, 안동`의 자긍심을 지켜가고 있는 안동사람과도 매우 닮았다. 창조적이며 진취적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안동양반들의 선비기질과도 잘 대비 된다.
안동은 BC 57년 염상도사가 창녕국을 세운 이래로 민족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민속문화에서부터 고려시대의 찬란했던 불교문화 그리고 조선시대의 유교문화로 이어져 오천년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라 해도 틀림이 없다. 이는 안동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기질(氣質)로 설명될 수 있다. 안동사람들이 지닌 기질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보수성과 자기 문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 자신감에서 표출되는 개혁, 현실비판에 따른 혁신성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작용해 이뤄낸 전통이다.
의리를 지키고 신의를 중시하는 기질은 유학을 바탕으로 한 학문연구와 양반의식이 빚어낸 결과이다. 주세붕, 우탁, 정몽주, 이숭인, 길재 등의 유학자가 성리학적 문화전통의 중심이 되는 영남사림의 줄기를 형성해 농암 이현보와 퇴계 이황에 이르러 완전한 형성을 이루게 된다. 그 후 퇴계의 학맥인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 경당 장흥효, 갈암 이현일, 대산 이상정 등으로 이어지는 퇴계학맥은 자신들만의 학문적 세계를 넓혀 영남학파의 근간이 되며 안동사람의 기질로 축적됐다.
안동의 양반들은 벼슬길에 나아가기 보다는 학문을 연구하고 덕성을 기르는 인격의 완성이 더 중요하다는 학자적 긍지를 지켜왔다. 선비가 지녀야할 덕목으로써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생활화하며 선비의 높은 도덕률로 양반의 체통을 지켰다. 그들은 대의명분을 따져서 이에 순할 수 있는 의리와 용기, 지조를 가지고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나아가서는 철저한 유교적 충효관으로 국가와 가문, 사회의 공헌을 귀중히 여겼다.
안동사람들은 목숨과도 바꾸며 지켜온 자신들의 세계관과 이상을 그들의 자식으로 하여금 생활 속에서 실천토록 가르쳤고, 문중이란 공동체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안동사람들이 지켜온 대쪽 같은 선비정신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잃게 되자 비분강개(悲憤慷慨)해 분연이 일어나 항일의병활동과 애국계몽운동, 독립운동 등 구국활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안동은 세계유산 하회마을에서 연행되는 선유줄불놀이와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보여주듯 양반들이 향유하는 지배계급의 문화와 피지배계급의 민중문화가 투쟁을 벌이기보다는 조화를 이뤘으며, 유림이 나서서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지주가 소작인회를 조직해 소작투쟁을 벌이는 전무후무한 역사가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양반, 상민의 대립과 반목은 별신굿이라는 장치를 통해 서로의 갈등을 해소했으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응하는 상생의 정신이야말로 안동문화가 지니는 장점이며 안동사람들의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했던 가치이다.
이제 며칠 후면 힘과 건강의 상징인 말(馬)의 해가 밝아 온다. `경상도 개도(開道) 70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담은 해이고 웅도경북의 역사와 전통을 우리 안동에서 이어가게 될 새 역사의 장이 펼쳐지는 원년이다.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견고한 성을 만들 수 있다`는 `중지성성(衆志成城)`의 의미처럼,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면 안동 발전을 위한 어떤 어려운 일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갑오년, 청말의 해를 부푼 가슴으로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