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디를 가나 창조라는 단어가 화제다. 특히 현정부가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있어서 심지어 미용원 이름도 `창조미용원`이 생겨났다는 농담처럼 창조가 화두가 되고 있다.
창조경제의 근간은 창의력이다.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판별하고 길러내는 것이 아주 시급한 문제이다.
수시모집을 마감한 대학들의 면접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이란 표현을 쓰는건 그만큼 면접경쟁이 치열하기 떄문이다.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창의력`이 있는 학생인가를 판별해 내는 것이다.
어떤 학부모 모임에서 “창의력은 타고나는 건가요? 길러지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다.
결론은 창의력은 타고난 재능과 교육의 융합체라고 할 수 있다. 타고난 재능만 가지고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창의가 발휘될 수 없고,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지식만 가지고도 창의력은 발휘되기 쉽지 않다.
비행기를 발명한 미국의 라이트 형제를 생각해 보자.
라이트 형제는 타고난 호기심과 창의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기압이 낮아지고 물체는 기압이 낮은쪽으로 움직인다”는 베르누이 정리에 의한 유선형의 원리를 교육받지 못했다면 비행기를 만들어 낼수 없었을 것이다. 라이트 형제의 업적은 그러한 원리 위에 디자인과 속도를 낼 수 있는 설계에서 창의력을 발휘하였다.
때론 창의력과 융합하는 기본지식은 공동작업으로 얻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의예에서 볼수 있다. 창의적인 사고로 사업적인 수완과 마케팅 감각이 뛰어났던 스티브 잡스는 천부적인 전자공학 지식을 가진 엔지니어 였던 워즈니악의 도움과 융합이 되면서 그의 창의적 사고가 빛을 발할 수 있었고 그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했고 각각의 장점을 합쳐 두사람은 애플의 성공 신화를 이끌어 내었다.
`창의력은 지능과 비례하는가`하는 것도 재미있는 질문이다.
지적능력의 지표인 IQ는 일정 이상만 넘으면 창의력과 관계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너무 높은 IQ는 암기력이나 이해도가 빨라 오히려 창의력에 방해가 된다는 이론도 있다.
따라서 한국적 교육환경에서의 수석합격, 수석졸업생들은 오히려 덜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고, 어느정도 공부는 잘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돌연변이적 사고를 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더 큰 창의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보는것이다.
돌이켜 보면 미국 명문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친구들의 공통점은 엉뚱한 성격의 친구였다. 적당히 공부는 잘했지만 수석을 한 것은 아니고 항상 호기심이 많았고 이상한 질문을 많이 했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은 한 곳에 열중하고 미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즐기는 사람을 못당한다는 말이 있는데 한 곳에 열중하고 미친다는 것은 그것을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초지식을 위해 공부를 얼마나 시켜야 창의력 배양과 균형을 이룰까 하는 문제도 큰 이슈이다.
보통 미국에 유학을 보내면 중고등학교 시절 너무 공부를 안시킨다고 걱정하는 한국의 학부모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미국은 어떻게 300여개의 노벨상을 배출해 내었을까?
사실 미국의 중고교생들은 보통 3~4시에 집에 돌아와서 논다. 논다는 의미는 다양한데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친구들과 떠들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한 시간을 한국의 학부모들은 논다고 생각하여 밤 늦게까지 공부시키는 한국의 중고교 교육을 오히려 그리워 하기도 한다.
사실상 수학·과학 경시대회 같은 곳에서 한국이나 아시아국가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건 그런 과도한 학습 덕분 일것 이다. 그러나 대학, 대학원을 가서는 중고등학교때 `놀던`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쩐일일까?
결국 창의력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기본적인 원리를 가르쳐주고 충분히 사고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창의력은 결국 교육적인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