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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때문에 고달픈 살림살이, 정부는 관심 가져야

등록일 2013-10-16 02:01 게재일 2013-10-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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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한안동시의회 의원
40년 전인 1973년 안동댐 건설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참으로 먹고 살기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다. 섬진강·소양강댐 만들고 나서 낙동강상류에 안동댐을 만들지 않았으면 낙동강 700리 부산 을숙도까지 공장을 만들고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로 변모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당시 안동댐 2만700여 수몰민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고 수백 년 관혼상제를 더불어 하던 고향땅을 버리고 어려우면서 굴곡이 많은 삶을 생면부지하고 살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국가의 위임받아 시행한 이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막상 수몰이 되자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물 설고 낮 설은 곳에 나오고 보니 평생 농사만 짓던 농부들 인근 토지는 3배로 급등했다. 대다수 살기 힘든 자녀들은 이·미용업소, 연탄배달, 운전업에 종사하고 주부들은 식당, 목욕탕, 접객업소 등지에서 막노동하며 자녀교육도 제대로 못시킨 여식들은 인근 공장생활을 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한 `어메·아베`의 처절하고 고단한 살림살이로 기다린 세월이 40년이다.

그 후 포항권역, 마산·창원권역, 대구·구미권역, 울산권역, 부산권역 등에 홍수조절은 물론 산업용수, 식수, 농업용수를 보내 산업화의 절대적 근간을 마련하여 새롭게 대도시지역 공업단지를 만들어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데 작게나마 일조했다.

이젠 우리 한국도 먹고 살만한 원조를 주는 나라, 세계 10대 수출국으로 글로벌 OECD 10위 국가가 됐다. 40년 전 수몰 1세대와 자녀들이 뭘 먹고 사는지, 근황은 어떤지, 조사는 커녕 안부편지나 전화한통, 고향사진 한 장 보내준 적 없다.

그 후 25년 전 또다시 임하댐을 만들어 9천600여명을 내몰고 그것도 모자라 1992년 길안댐을 만들려다 시민들의 저항에 염치가 없던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더니 돌아서서 임하댐 옆구리를 터서 영천댐과 연결하는 도수로를 만들어 물을 보내다가 임하댐이 탁도가 심하니 부랴부랴 성덕 저수지를 키워 성덕댐을 만들고 26km 물을 흘려보내 길안천 도수로 연결사업을 강제로 밀어붙이려고 시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안동댐, 임하댐을 연결하여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등 당국의 행보는 `봉이 김선달`이 연상될 정도다.

도대체 댐 유역민에 대한 배려 없이 자행되는 토목종합계획백서가 어디까지 송두리째 빼앗아가려는 건지 묻고 싶다. 안동댐 물통은 자연환경 보전지역, 임하댐 물통은 수변구역, 자연을 훼손한 주체는 따로 있는데 정작 수리권 이해 당사자는 숨도 못 쉬도록 규제만하면 수익자부담원칙 위반이며, 불공정거래의 대표적 위반사건임을 알아야 한다.

도시와 농촌이 가장 잘 어우러진 내고장 안동이 인위적인 기형도시가 되면서 안동·임하댐은 물배달 총판 대리점, 성덕댐과 함밤보, 도수로는 영업소, 영천댐은 배달업소, 수자원공사가 본사라면 대주주는 안동이다. 앞으로 수리권을 지역민에게 돌려주어야 하는데 어떤 해법이 있는지 궁금하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낙동강유역환경청), 낙동강 상·중·하류민 이해당사자는 수질과 수량 등 수리권을 함께 논의하고, 전문가인 수자원공사는 물 관리에만 전념하여 상호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수자원 이용과 보전을 목표로 아름다운 강 살림을 도모 하는데 정부의 조속하고도 합리적인 조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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