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워드프로세서 기능이 내 의지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복사도 잘 안 되고, 파일 저장도 몇 번이나 클릭을 해야 겨우 될 정도이다. 평소에 인터넷도 느리게 뜨는데다 자판키도 변덕이 심하다. 내 생각엔 노트북이 오래되어 그런 것 같은데, 식구들은 내가 기계치인데다 컴맹이라 활용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렇단다.
오늘도 노트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불필요한 문장에다 검은 옷을 입혀, 지우기를 해야 하는데 원하는 부분만 선택되는 게 아니라 자꾸만 모든 문장에 검은 옷이 입혀진다. 몇 번 클릭을 해야 겨우 한 번 성공할 정도이다. 그도 잠시, 저장하기 위해 파일 버튼을 누르면 목록이 떠야 하는데 목록 자체가 아예 보이질 않는다. 어쩌란 말이냐. 시간은 없고, 마음은 급하고.
출근하느라 바쁜 남편 손목을 끌고 컴퓨터 앞에 앉힌다. 한두 번 시도해보더니 말없이 마우스 패드를 다른 것으로 바꾼다. 어라, 마법에 걸린 공주가 잠에서 깨어나듯 글자가 살아나고, 원하는 문구 위에 척척 검은 장막도 드리울 수 있다. 그토록 애 먹이던 파일 목록도 잘만 뜬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 나로선 노트북 자체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단 한 번도 마우스패드가 낡아서 접촉 불량일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마우스에라도 이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도 이르지 못했다. 오로지 컴퓨터가 잘 안 되는 건 컴퓨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어떤 문제의 본질은 너무 단순해 문제 자체가 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거창한 데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는 손가락이 아플 뿐인데, 나는 지레짐작으로 그 상대의 오장육부까지 관장하려 든다. 달을 가리키는 손과 달이 있을 때 언제나 저 달만이 답일 거라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때론 달을 가리키는 손끝에 답이 걸려 있을 수도 있다. 삶의 본질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곳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의 다양하고도 단순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