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30년 전의 일이다.
1983년 9월1일 대한항공 KAL 007편이 일본 근해 사할린 상공에서 당시 소련의 미사일 공격으로 격추된 사건은 요즘 젊은이들에겐 잊혀진 사건일지 모른다. 뉴욕을 출발하여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기가 소련의 미사일 공격으로 269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은 당시 전세계적인 톱뉴스로 유엔 안보리가 개최되고 전 세계적으로 소련에 대한 비난과 규탄의 함성이 일었다. 당시 미국 전역의 각 대학에서는 한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소련 규탄대회가 열렸다. 많은 미국학생들도 함께 이 규탄대열에 호응하였고 미국 전역으로 규탄의 불길이 번져갔다.
필자가 공부했던 일리노이대학교에서도 대규모 규탄대회가 열렸고 당시 한인학생회장이었던 필자는 마이크를 들고 성명서를 낭독한 후 수백명의 학생들과 플래카드와 태극기를 들고 학교 교정을 돌면서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였었다. 어제 30년전 빛바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희생자들의 가족과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페이스북의 여러 친구들이 그 사진을 클릭하면서 함께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30년이 흘렀다.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이 전국을 들끓게 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사건과 30년전의 대한항공 피격사건이 겹쳐 떠오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다. 아직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갈등을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전 다녀온 체코 프라하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곳에서 자유물결의 상징인 `프라하의 봄`을 분명히 보았다.
`프라하의 봄`의 역사는 이데올로기의 종말의 시작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19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민주 ·자유화의 실현을 위한 조직적인 운동을 펴기 시작하였고, 이 물결에 밀려 마침내 1968년 1월 개혁파의 두부체크가 당 서기장을 맡으면서 이러한 자유화를 위한 정책적 변화가 있자 온 국민은 `프라하의 봄`이라 하여 공산체제로부터의 탈바꿈을 환영하였다. 그러나 그후 소련은 체코를 침공함으로써 이 자유화 운동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체코는 이데올로기의 질곡에서 벗어나 20년후 완전 자유화 되었다.
전국을 강타한 `내란음모 사건`.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로 조사를 진행 중이고 `녹취록`에는 국가 주요시설 타격 등을 거론한 일부 진보인사들의 발언이 담겨있다고 한다. 이 내용 자체로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발언은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것은 물론 아직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낡은 이데올로기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난다.
특히 방금 동독이었던 독일 드레스덴에서 두달간 연구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로서 독일인들이 실소를 금치 못할 일들이 여기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고 슬픈 일로 다가온다.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70년대도 사회주의 사상에 빠진 친구들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빈부의 격차가 없이 공정하게 나눈다는 그들의 사상이 환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곧 그러한 사상이 허구라는 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가슴으로 잘못 느끼는 것을 이성으로 파악할 능력과 소양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30년전 무고한 26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 격추사건 30주년이 되는 날, 내란음모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다.
한가지 확실한 건 그들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휴지통에 버려진 것이라는 점이다. 더 이상의 싸움이 의미가 없다고 모두 폐기되었다.
해방후 70년 가까이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분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제 이런 의미없는 소모전을 정말로 멈추어야 한다.
다시 한번 30년전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