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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의 품격 있는 처신이 요구된다

등록일 2013-08-12 00:20 게재일 2013-08-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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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얼마 전 미국의 대통령 부시가 오랜 만에 삭발한 모습으로 어떤 어린이를 안고 뉴스에 등장했다. 과거 동료 직원 아들의 골수암 치료비를 걷기 위한 행사장에서의 인자한 모습이다.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되어 자랑스러워하던 모습보다 훨씬 훌륭해 보이는 아름다운 사진이다. 한편 또 다른 뉴스에는 세계와 통하지 않는 북한을 방문하여 그들을 설득하려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모습도 소개됐다. 그는 지금도 전 세계의 집 없는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Habitat)운동을 18년째 참여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사는 한국의 조그마한 지방도시 경산까지 방문하여 집을 지어 주고 떠난 적이 있다. 모두가 전직 대통령의 존경스러운 모습이며 아름다운 처신이다.

이 나라에는 전직 전두환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로 온통 나라가 시끄럽다. 검찰 조사를 준비하고 대응하는 그의 모습에서 전 대통령의 얼굴은 찾아보기 어렵다. 재판정에서 29만원 밖에 없어 추징금은 낼 수 없다던 대통령의 발언은 아직도 시중에서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측근 수십 명을 이끌고 해외 골프치러 다닌다는 비난 여론에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초청 골프도 못 치느냐고 항변한다. 심지어 자녀와 처남의 수천억 원에 이르는 재산을 검찰이 역추적하자 대통령되기 전부터 재산이 많았다고 강변하고 나섰다. 추징금도 일종의 형벌인데 미납 상태로 버티려는 모습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대응 논리는 너무 유치하고 수치스럽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두 분뿐 아니라 세상의 존경받는 지도자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나라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품격 잃은 행동은 전두환 대통령 한 명에 국한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기 아들의 국회의원 공천 문제로 전직 대통령의 품격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최근 재산 문제로 형제간 뿐 아니라 전 사돈 간에도 송사에 휘말려 추태를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석연치 않은 비리조사과정에서 갑작스런 자살로서 그의 생을 마감했다. 이들의 무책임하고 품격 없는 행적은 국민적인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직 대통령들의 처신과 돌출은 재직 쌓아온 훌륭한 공적까지도 반감시킨다. 이 나라의 전직 대통령의 이러한 부당한 행적은 우리의 국격까지 실추시키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직 대통령도 헌법이 보장한 국가 원수로서 국가를 대표하신 분들이다. 그러기에 이 나라 전직 대통령은 재임 중은 물론 퇴임 후에도 법에 의해 보호 받고 예우를 받는다. 그러므로 전직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철저해야 한다. 그들의 퇴임 후 행동과 처신도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행히도 이 나라에는 해방이후 11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아직도 국민적으로 손을 모아 존경받는 대통령은 없는 듯하다. 결국 이러한 불행은 이 나라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불신의 토대가 되고 우리사회에 팽배한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적 허무주의로 연결되고 있다. 이 나라 최고위 직인 대통령의 초법적이고 탈법적인 권력 남용뿐 아니라 퇴임 후의 행적은 결국 이 나라의 법치주의 근간까지 허물어 버린다.

전직 대통령은 바람직한 처신과 품격이 어느 때 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 사회에는 전직 대통령이 퇴임 후 기여할 수 있는 분야는 어디에나 산적해 있다. 전직 대통령은 우리처럼 정치적 갈등이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세상에 정파를 뛰어 넘는 해법과 비전을 제시할 수는 없을까.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곳에 낮은 자세로 임하여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존경받는 어른의 자격은 획득 할 수 없을까. 특히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 나라에서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은 어느 때 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한 거창한 일에 앞서 전직 대통령은 평범한 시민으로서 선량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양식과 처신을 보여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각성이 어느 때 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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