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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 선진화는 건강한 중도층 형성에서

등록일 2013-07-29 00:58 게재일 2013-07-2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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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 교수·정치학

중국 남방 개방도시 선전(深玔)의 공원에는 등소평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키가 작기로 소문난 그이지만 거대한 그의 가대상은 선전시를 응시하고 있다. 등소평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은 중국 개혁 개방과 오늘의 거대 중국의 기틀이 되었다. 그는 흰 고양이든 검은 거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실용노선을 통해 중국의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를 견인하였다. 문화 혁명 시 극좌 이념에 의해 고통당했던 그는 중도적 실용주의만이 중국을 살릴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중국의 어디를 가나 그의 저서는 많이 팔리고 오늘날 존경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나라의 정치에서도 실용적인 건강한 중도 층이 어느 때 보다 요구된다. 극좌나 극우 뿐 아니라 폐쇄된 보수와 진보 이념은 서로 상대를 백안시하고 부정하려는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그로인해 정치에서도 여야는 시원한 합의보다는 상대를 비판하고 척결하려는 갈등의 정치가 계속되는 것이다. 시민 사회에서도 자신은 항상 백이고, 상대는 흑이라는 흑백 논리가 상당히 지배하고 있다. 이는 자신은 항상 정의와 선이며, 상대는 부정이고 악이라는 이분법적 흑백론 적 사고의 결과이다. 경직된 보수는 진보적인 상대를 종북 좌파로 매도하고, 경직된 진보는 상대를 수구 꼴통으로 비난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흑백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우리 정치의 안정과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정치가 대화와 상생보다는 대립과 투쟁 정치로 변질된 것은 그것이 조선의 당파정치의 영향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당시의 사색당쟁이 오늘의 정당 정치의 기본 담론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당쟁에 이은 사화는 연루된 본인뿐 아니라 자손들 까지 희생 제물이 되었으니 우리 정치사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 후 일제의 식민 통치하에서의 친일과 항일, 해방 정국의 정부 수립시의 좌우 논쟁, 그 후의 6·25와 같은 민족적 비극은 이념의 좌우 논쟁을 더욱 확산·심화시켰다. 그 후 독재와 군부 정치 청산이라는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사꾸라 논쟁은 우리 정치에서 선명성이라는 미명으로 흑백의 논리를 더욱 강요하게 되었다.

흑백 논리에 의한 갈등과 분열의 정치는 한국 정치의 선진화를 막고 있다. 여야 정치인 뿐 아니라 국민의 여론도 분열시켜 결국 국민적 통합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가령 현안이 된 개성 공단, NLL 문제,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만 하더라도 사실에 의한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대응논리가 우선한다. 진보 진영의 촛불 집회와 보수 연합의 항의 집회는 이를 입증한다. 우리 사회에는 친목회, 동창회, 종친회에서도 흑백의 논리로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격론이 벌어져 얼굴을 붉히고 돌아 서는 모습까지 본다.

정치학자 바라다트(Baradat)는 일찍부터 정치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중도층(moderate)을 설정하고 있다. 그는 좌우로 치우친 양극 정치는 하나의 이상이며, 결국은 그것은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극과 극은 결국 정치적 허무주의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에서 우선 정치적 흑백논리로 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그 해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진영 싸움이 계속되는 정치판에서는 합리적인 협상 자체를 `야합`이나 `굴종`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시민 사회에서도 보수와 진보가 아닌 온건한 중도세력은 `회색분자`로 취급되고, 때로는 정치적`기회주의자`로 오해 받기 때문이다.

온건한 중도 층이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통해 `흑백의 정치`를 판단할 때 이 나라는 정치적 안정과 발전은 기대할 수 있다. 정치적 이슈를 정파적으로 쟁점화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은 국론 분열의 의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평가할수 있는 건전한 중도 세력이 더욱 확충되어야 한다. 편 가르기 정치에서 가담하지 않고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깨어 있는 중도 층 유권자가 늘어나야 정치적 안정은 회복될 수 있다. 그것이 한국 정치의 선진화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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