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재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있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 사는 다섯 명 모두는 책을 좋아하고 사람을 귀히 여기며 섬세한 감각을 지녔다. 좋은 날 불쑥 각자 기차를 타고 청주나 부산 또는 경주나 대전 어디쯤에 모여 점심을 함께 한다. 읽은 책을 화제 삼고 가진 책을 나누며, 잘 쓴 글을 부러워하고 책 목록을 공유한다. 물론 책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자식 문제를 의논하며, 남편 흉도 보고 시댁 문화를 성토하기도 한다. 주어진 한나절의 시간이 짧다는 걸 알기에 오래 만나는 사람들 이상으로 인간사 희로애락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내곤 한다.
이 매혹적인 모임은 책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한 친구 덕에 가능했다. 열정과 선함이 몸에 밴 그미는 나머지 네 명을 적극적으로 아우르고 배려하고 챙겼다. 그 덕에 전국 어디서나 자유롭게 모여 토론하고 웃을 수 있었다. 그 어떤 방해꾼도 없이 한나절을 오직 책만으로 즐거웠다. 그렇게 모임을 이끌던 그미가 멀리 떠났다. 미국인 남편을 따라 식구 모두 LA로 가게 되었다.
환송회가 있던 대전 모임, 그녀의 착한 남편은 손수 그린 그림 네 점을 들고 나타났다. 남은 우리를 위한 깜짝 선물이었다. 미술을 전공한 그녀의 남편은 또박또박 우리말로 아내의 좋은 친구가 돼줘서 고맙다고 했다. 우리는 울고 웃었다. 감동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그랬듯 그곳에서도 그녀는 제 좋은 기를 나눠줌으로써 여러 사람에게서 사랑받을 것이다. 선한 열정을 가르쳐준 그녀를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년 뒤 그곳에서 만나자는 그녀의 진심어린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