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의 한중 국제 학술회의 후 중국 옌타이 등 산동성 북부지역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급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중국의 발전 모습에 놀라는 학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여행 중 서울의 어느 교수는 거대한 중국의 급속한 발전에 놀라 우리의 모습이 왜소한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까지 하였다. 나는 그에게 중국의 발전이 놀랍지만 한국 경제발전에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침으로 우려할 사항은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나는 그에게 시간이 나면 낙후된 중국의 오지나 북서부 지역을 여행해 보라고 권하였다. 나는 중국의 성장과 발전이 외형적으로 빠른 변화임엔 틀림없으나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분명한 것은 급속한 중국의 성장 뒤에는 발전을 가로 막은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의 고민이며, 그들이 노출을 꺼리는 `불편한 진실`이다.
우선 중국은 외형적으로 56개 소수 민족이 13억의 `하나의 중국`을 이루어 `조화로운 세계`를 건설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티베트나 신장, 내몽골 자치구에서 보듯이 중국의 2억6천만에 이르는 소수민족의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은 수시로 폭발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소수민족 우대 정책(?)을 펴고 민족담당 장관까지 두고 있지만, 한족이나 중앙 정부에 대한 불만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지난해 내가 참여한 쿤밍의 거창한 `세계 인류학 및 민족학 국제학술대회`도 중국 정부의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의 저항에서 보듯이 중국 중앙 정부에 대한 소수민족의 저항은 중국의 개방 정도에 비례하여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둘째, 중국의 사회주의적 시장(socialist marketing) 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중국인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사실 중국은 등소평 이후 세계 최대의 인구와 자원을 통해 괄목한 성장을 이룩하여 G2 국가에 진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당 국가 독점적인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와 어느 정도로 조화할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정치적 다원화된 민주주의의 토대 없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민주화 없이 중국의 경제 발전을 낙관할 수 없다는 우리의 주장에 중국학자들은 중국적 특색만 강조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셋째, 중국의 인권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지만 잠재화되어 있을 뿐이다. 중국 천안문 사태시의 강제 무력진압뿐 아니라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감시와 가혹한 처벌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는 아직도 감금 대상이 되고 있으며, 티베트 등 각 자치구에서 발생하는 반체제 운동에 대한 중국의 무자비한 탄압은 중국 인권 문제의 현주소를 그대로 입증한다. 몇 해 전 중국 정부가 불온시하는 파룬궁 행사 때문 나까지 몸수색 당한 후 인력거를 이용했던 불쾌한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넷째, 중국 사회의 관료들의 부패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중앙 정부 당국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은 이해하고 있으나 그 근절책은 아직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전 현직 권력 최고위 층 자녀들의 기업 장악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돼 있다. 새로운 지도자 시진핑까지 공직 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으려고 시도하지만 `꽌시`(연줄)로 뿌리 내린 특권구조의 개혁과 청산 없이는 어려운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어느 학술 대회에서나 관치화된 중국학자들은 이러한 중국의 내부모순을 거론하기를 피하고 있다. 개방된 사회의 서구의 보편적인 기준이나 가치로 보면 분명 정상이 아닌데도 그들은 중국식 가치를 강조할 뿐이다. 이것이 중국식 사회주의의 현실적 모순이며, 그들의 불편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