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의 언어 습관까지 관장하려는 당국에 맞서 민초들은 일부러 `자장면` 대신 `짜장면`을 힘주어 외치곤 했다. 그 투쟁으로 짜장면은 온전한 제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자장면`이 품은 교양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당국은 겨우 자장면과 동거하는 수준에서 짜장면을 허락했지만 그쯤은 상관없다. 짜장면은 애초에 교양이나 지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서민적인 낱말이므로.
글 모임에서 합평회를 했다. 그놈의 표준어규정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엔 짜장면이 아니라 `까탈스럽다`가 그 연민의 대상이었다. 규정에 의하면 그것은 `까다롭다`의 잘못된 표기란다. 표준어규정 제25항의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경우, 그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에 근거를 뒀다.
하지만 `까탈스럽다`의 경우 그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까다롭다` 가 `까탈스럽다`보다 널리 쓰인다고 보기도 어렵고, `까다롭다`와 `까탈스럽다`는 쓰임새 자체도 다르다. 전자가 상황이나 조건에 쓰이는 말이라면 후자는 대상의 성격을 표현할 때 맞춤하지 않던가. 예를 들면 `문제가 까다로워 풀기가 어려웠다, 까탈스러운 그의 성격 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다`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타당한 언어의 현장성이 우리말법이란 규제에 갇힐 때 언중은 혼란스럽다. 변하는 게 언어의 속성이다. 당연히 그 수용에도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변화와 규정이라는 그 정반의 줄다리기 속에서 호흡 곤란을 앓는 낱말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뒷전으로 밀려난, 합리적 수용 대상의 언어들이 하루 바삐 날개를 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