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26일 박 대통령의 시해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얼굴이 회상된다. 국가 보위비상대착위원장으로서 텔레비전 앞에 불쑥 등장하여`본인은…. 구악을 일소하고 새로운 정의 사회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하던 모습이 굵직한 음성과 함께 클로즈 업 된다. 정권의 정통성이 약한 전두환 5공은 사회 정화를 국정의 슬로건으로 내걸고 등장하였다. 각종 청탁과 비리를 일소한다는 명분으로`청탁 배격`이라는 팻말까지 공무원의 책상위에 비치하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도 당시 어리석은 국민들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 `정의 사회`를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전두환의 5공은 1987년 민중 항쟁으로 종말을 고하게 된다.`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 한다`는 로드 액턴 경의 말처럼 신군부 정권은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채 끝나 버렸다. 그는 청와대 안가에서 대기업들로부터 받은 거액의 뇌물인 9천500억원은 1997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는 5774억원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금액을 뺀 2천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나 현재 미납금만 1천672억원에 이르고 있다. 2003년 법정에서 그의 전 재산이 29만 1천원뿐이라 추징금을 낼 수 없다고 하여 아직도 국민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그 동안의 부적절한 행보는 국민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연희동 그의 자택은 아직도 수많은 경찰 경비 인력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 그는 후임 대통령 취임식에는 빠지지 않고 중앙 단상에 자리하여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즐기고 있다. 그는 밀린 추징금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육사 등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상당한 후원금을 던지고 있다. 해외 골프 여행 등을 즐기고, 각종 행사에는 아직도 그의 측근을 대동하고 있다. 그의 대구 모교에는 기념관 까지 마련된 실정이다. 3남1녀의 재산은 언론에 밝혀진 대로 2천억원 대를 넘어서고 있다. 추징금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그의 행보는 시민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정치현실이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이 추징금 문제에 대해`지난 정부들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지난 정부를 강하게 질타하였다. 박대통령은 대선 공약인 지하 경제의 양성화 차원에서도 이 문제만큼은 반드시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피력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조치는 국민적인 지지와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할 시의 적절한 조치이다. 검찰도 과거와는 달리 비자금의 환수 문제는 끝까지 추적하여 그 전모를 밝히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다행이다. 야당 역시 추징금의 공소 시효가 끝나기 전`전두환 추징금 환수 법` 까지 만들어 추징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전 대통령의 추징금을 엄격히 추적하여 조속히 환수 조치할 필요성이 있다. 정부가 집권 초기의 이 기회를 놓치면 얽히고설킨 한국적 정치 현실에서 과거처럼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전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에 비해 비자금을 철저히 은닉한 것은 그의 평소의`의리 있는 인맥관리`의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의 일반 여론은 그의 비자금을`못 찾는 것이 아니라 안 찾는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번 칼을 빼어든 검찰이 사력을 다해 국민적인 의혹을 해소할 책임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찰의 끈질긴 추적과 철저한 조사도 중요하지만 전 대통령 스스로 양심선언을 통해 비자금의 용처를 스스로 밝힐 수는 없을까. 그의 자녀들의 엄청난 재산 증식 현상을 볼 때 심증은 확실한데도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검찰의 고민일 것이다.
정치사의 얼룩진 비밀은 일시적으로 은폐될 뿐이며 영원한 비밀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경험이며 일종의 아이러니이다. 박근혜 정부는 우리사회에 팽배한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허무주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의 조사와 환수조치는 철저히 이루어 져야 한다. 그것이`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우리 사회의 불신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