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고교 동창회에서 오랜 외국생활을 하고 귀국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새로운 한국생활의 적응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빌딩에 들어갈 때 뒷사람이 따라 들어오고 있어서 문을 잡아줬는데, 결과가 아주 참담했다는 것이다. 뒤에서 따라들어온 사람이 고맙다는 말을 안하고 휙 지나갈 뿐만 아니라 자신은 계속 문고리를 잡고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자기가 잡아주는 문을 통해 말없이 지나가니까 결국 그는 계속 문을 잡고 서있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뒷사람이 “땡큐”라고 감사를 표시하고 릴레이로 문을 잡아주는 서구 문화에 익숙한 그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서구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당황하는 문화적 관습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몇개만 지적해 보면서 우리 문화관습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또한 이러한 잘못된 관습이 어떤 시사점을 갖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위에 언급한 문고리 잡기 문제는 대학 캠퍼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 문을 잡아줘도 고맙다는 말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영어로 “You are welcome(천만에요)”이라고 말한 적이 몇번 있었다. 그러면 멋적은 표정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감사의 말은 물론 뒷사람을 위해 스스로 문고리를 잡아주는, 남에 대한 배려가 우리에게는 부족한 듯 하다.
남이 나를 위해 베푸는 친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무감각, 그리고 그런 배려를 나도 남에게 베풀어주어야 한다는 남에 대한 생각이 우리에겐 부족하다. 복잡한 길거리나 백화점에서 남을 툭 치고 지나가면서 “Excuse me(미안합니다)”는 서양에서는 생활화 돼있다. 일본에서도 “쓰미마셍”이라는 같은 뜻의 단어가 일상 생활에서 무척 많이 쓰인다. 이상하게도 유독히 한국에서는 남을 치고 지나가면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당하는 사람은 불쾌하기 그지없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이 지나간다. 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그토록 아끼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반면 서구에서는 병원, 백화점, 음식점, 길가 어디서든 남을 스치거나 치게되면 꼭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볼수 있다.
나로 인하여 남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남을 배려하는 문화의 면면을 볼수 있다.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점이다. 엘리베이터에서, 골목에서, 등산길에 또 그냥 길거리에서 낯선사람을 만나면 한국에서는 그냥 무표정으로 지나가는데 반해 서구에서는 “Hi(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습관화돼 있다.
요즘 우리사회에 번지고 있는 `낯선사람 만나면 웃어주기 운동`은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아직도 갈길이 멀게 느껴진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낯선사람이 타면 “안녕하세요”라고 웃어주면 어떨까? 아파트 같은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웃어주는 상대에게 함께 미소로 답하면 우리사회는 얼마나 따뜻한 사회가 될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목사 겸 작가인 로버트 풀검의 유명한 책 `내가 정말 알아야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를 읽어보면 모든 예절과 문화적 관습, 생활에 필요한 지혜를 어려서 잘 배워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유치원에서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세가지 말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정확히 가르쳐 줬으면 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러한 기본적인 예의를 가르치는 것은 학과목을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한국은 예절이 밝은 국가라고 한다. 고개를 숙여 절하는 문화, 부모님께 명절때나 결혼식때 무릎을 꿇고 절하는 문화 등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문화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어야 한다. 남에게 보여지는 형식이 아니라 진정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