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국회에서 한 영어연설은 국내외 관심을 크게 끌고 있다. 관심을 끄는 만큼 평가도 엇갈린다.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뛰어난 연설이라는 평에서부터 꼭 영어로 해야 하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싸이는 한국말로 노래하고, 박 대통령은 영어로 연설한다. 누가 더 애국자인가?”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그 국회의원은 싸이가 더 애국자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국수주의와 애국주의를 혼돈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애국의 정의는 무엇일까? 우리 것만을 사랑한다고 한국어만 쓰고, 한국음식만 먹고, 연호도 서기가 아닌 단기만을 쓰고, “우리끼리만”이라는 사고방식, 그런 폐쇄적인 모습이 과연 애국일까? 그런 모습은 가까이 북한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외래어를 안 쓴다고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하고, 서기연호를 안 쓰고 주체 몇 년이라고 하고, 주체 사상이라 지도자를 우상숭배하듯이 하고, 외국문화 외래정보와 단절한다고 인터넷도 쓰지않는 그런 곳이 북한이다. 그게 애국일까? 그 결과는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는 국가가 되고 있는게 북한이다.
애국이란 결코 폐쇄주의나 국수주의가 아니다. 나만이 최고고, 내 것 만을 쓰고, 내 것 만을 강조하는 것이 애국이 아닌 것이다. 남이 인정하지 않는 내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애국이란 세계의 모든 국가, 국민들과 함께 어울리면서도 한국의 정치·사회·문화를 알리고, 경제수준을 높이고, 세계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그것이 진정 애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국수주의의 사례를 종종본다. 대학에서 영어강의가 국민에게 보장된 기본권인 자기언어사용권을 제한한다고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는 교수나 학생도 있는 형편이다.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에게 임금이나 대우에 있어서 불공정하게 대하는 모습이나 이민유입에 거부감을 갖는 것도 문제다. 미국에 무려 300만의 한국 교민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이민 온 외국인에 대한 대우는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번 미국국회에서 행한 영어연설에 대한 일부 비난도 역시 국수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을 알리기 위해 그들의 언어인 국제언어로 연설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반대로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서 한국어로 연설한다면 우린 얼마나 친근감을 느낄 것인가?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극단적인 우경화나 국수주의를 우리가 비난하면서 우리도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지 않나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애국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세계 곳곳을 가는 곳 마다 영어 연설을 해야 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전세계를 뛰어다니며 외국어로 상품을 설명하면서 한국 상품을 파는 세일즈맨들. 한국 문학을 알리기 위해 우리 문학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가들. 외국에서 제품 생산기지를 지키고 각종 건설을 하고 있는 기업인과 근로자들. 해외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각종 학회에서 발표하는 한국 학자들, 외국에서 한국어·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문화원들은 그걸 가르치기 위해 여러 나라 언어를 구사해야 하고, 현지인들과 친해져야 한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LPGA를 호령하는 한국 여자 골퍼들이나 피겨의 여왕 김연아선수의 영어 인터뷰는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태권도의 세계화는 현지화에 의해 가능했다. 그들은 모두 외국어 또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그들은 한국의 자긍심을 높이는 진정한 애국자들이다. 애국이란 무엇일까? 우리 것만을 고립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결코 애국이 아니다. 세계 속에서 세계인들과 어울리며, 때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한국을 알리고, 한국을 인정받도록 하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 애국 아닐까? 그들이 진정한 애국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