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아성인 호남지방에서 승리한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전남, 전북, 광주를 망라한 세 지역 전체 1839개 투표소 중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대승한 단 한 지역은 바로 한센병 환자들의 고향인 전남 고흥군 도양읍 제7투표소이다. 최고 90%가 넘는 곳이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민주당의 아성에서 여당의 승리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로 받아들여 진다. 이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62%의 지지를 받았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부재자 투표를 포함하면 이보다 더 지지율이 높았을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소록도는 박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생전에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지역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한센병 환자의 어머니`로 불리는 지역이다. 일일이 다 소개할 순 없지만 육 여사의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애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를 천대할 때 그 높은 분이 우리를 위해 맛 있는 돼지도 사 주고 집도 지어줬으며 청와대에 초청까지 해 주셨다. 그 분의 딸이 선거에 나왔으니 경상도, 전라도 구분 없이 소록도에 사는 사람들은 박근혜 후보를 찍은 것이다. 이른바 소록도 대첩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보낸 사랑과 헌신은 절대의 고정관념까지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소록도에는 육영수 여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이 녹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귀국하고 없지만 43년 동안 이땅의 한센병 환자들을 묵묵히 돌봐오던 벽안의 두 수녀 이야기는 우리의 눈시울을 적신다. 1962년 20대 후반의 나이에 수도자로 소록도에 첫 발을 디딘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와 마거릿 피사렛 수녀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들이 이땅에 첫발을 내디뎠을때는 전후 복구도 제대로 안돼 궁핍함이 나라 전체에 만연해 있을 때였다. 그 누구도 자신조차 돌보기 어려운 시절, 꽃다운 나이로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낯선 곳에서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더구나 일반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상당수의 의료인조차 꺼려하는 한센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봉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의 표상이 아닐수 없다.
이 땅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이 적지않다. 개화기에 한국에 왔던 캐나다 출신 제임스 게일도 한국 문화를 유난히 사랑해 한국인들의 가난함과 낙후함을 안타까워 했다. 세종대왕과 김유신 장군을 존경했으며 YMCA를 세우고 조선은 동양의 희랍(그리스)이라고 소개하는 등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로 한영사전을 세 번이나 편찬하기도 했다. 나눔으로 기쁨을 얻는 행복한 기부를 먼저 실천한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도 예외는 아니다. 1904년 그의 기부 문화가 효시가 돼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 세워졌다. 기증자의 이름을 딴 세브란스 병원으로,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다. 한 시대를 앞선 자비의 인술을 온몸으로 실현한 것이다. 6·25 전쟁중인 한국의 참상을 TV로 보고 간호사인 아내와 무작정 한국행 화물선에 올랐던 영국의 존 콘스 박사도 있다. 그가 자동차 배터리로 수술 조명등을 켜고, 외상 환자들을 치료해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던 한국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전개했던 뜻을 기려 정부가 뒤늦게나마 훈장을 추서했다는 봄바람 같은 소식도 들린다.
한국은 `가축과 같은 미개한 야만인이 사는 나라`로 인식되며 복지의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대에 타국의 백성들을 위해 혼신을 다했던 외국인 복지 선각자들의 아름다운 흔적들은 오늘날 세계 경제 8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에너지가 되고 복지 선진국으로 가는 초석이자 소중한 자산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