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차트 2위 까지 진입했던 한국 가수 싸이가 자랑스럽다. 전형적인 한국인 얼굴인 그가 말춤과 노래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음악뿐만 아니라 드라마, 스포츠, 심지어 한국의 음식 김치까지 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무관심하던 외국인들이 이제 한국인이라면 엄지를 치켜세운다. 한류라는 바람이 드센 곳 일수록 한국인들이 더욱 환영받고 있다.
싸이와 함께 `강남스타일`뮤직비디오에 출연해 재롱을 부리던 `리틀 싸이` 황민우(8) 군이 악성 댓글로 수난을 받고 있다. 영상에 비친 그의 춤 솜씨를 보니 정말 귀엽고 대견스러웠다. 그런 `리틀 싸이`를 이 나라의 무모한 네티즌들이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 것이다. 이 아이의 엄마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욕설을 섞어가며 엄마까지 비난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리틀 싸이 측이 인종 차별과 성적 비하를 문제 삼아 경찰에 고발하고, 급기야 수사에 나섰다. 우리의 수치스러운 다문화의 한 단면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이주민 100만명으로 인구의 2%를 넘었으니 통계적으로는 확실한 다문화 사회다. 천진무구한 리틀 싸이와 그 부모를 향해 돌팔매질을 해대는 이 사회가 정상적인 다문화 사회일까. 심지어 생존을 위해 북한을 탈출, 이 땅에 정착하려는 탈북자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 부터인가 자기보다 약한 자는 깔보고 무시하는 `새도 매저키즘`적인 현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일찍이 사회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경고한 `강자에게는 끝없이 굴종하고 약자를 짓밟으려는 야수적 욕망`이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고, 쾌감을 맛보는 사회 심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병든 모습이다.
지구촌에는 이제 문화 인류학적으로 순수 단일 혈통을 지키는 나라는 사라지고, 다민족 다문화가 보편적인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흑인 대통령이 이끄는 세계 최강 미국의 융성은 말 할 것도 없고, G2 국가로 자리 잡은 중국도 약 3억명이 한족이 아닌 이민족이다. 캐나다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의 부흥과 발전의 바탕에는 합리적인 이민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에는 우리의 노력뿐 아니라 동남아 이주 노동자의 피땀도 일조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일본의 쇠락은 정부 주도의 국수주의적이고 배타적인 문화 구조가 자초한 비극이라는 분석도 일리가 있다.
리틀 싸이의 수난을 보면서 이제 우리의 다문화 사회의 현 주소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장·단기적인 다문화 다민족 정책을 세워야 한다. 몇 해 전 영국 불랙번의 다문화 교육 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파키스탄 출신의 여성 책임자가 설명하는 영국의 다문화 정책에 감탄하고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근 도시 맨체스터에서 환영받는 한국인 박지성의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기 까지 했다. 이제 우리도 서둘러 사회 화합적 관점의 선진 다문화 정책을 벤치마킹할 시점이다.
그러나 다문화 사회의 정착은 정부의 정책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에 앞서 우리 국민들의 다문화에 대한 기본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 선조들이 과거 일본 땅에서 겪은 `조센징`이라는 민족적 차별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이주민에 대한 태도는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전 세계 180여 개국에서 살아가는 750만 우리의 재외 동포들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생각부터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조금 우월하다고 이 땅에 찾아온 온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멸시적 태도는 시급히 바꾸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시민사회 부터 인종적 지역적 편견이 없는 `용광로 사회` 건설을 위해 `우리 함께(We Together)운동` 이라도 펼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