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영어와 국가경쟁력`에 대해 라디오 대담토론을 하는 자리에서 상대방 토론자인 영어과 교수가 영어가 국가경쟁력과 관련이 적다는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 교수님은 모든 사람이 영어를 다 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대기업의 대부분의 매출이 해외에서 이뤄지는 상황에서 공학도를 가르치는 공과대학 교수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 대담프로그램은 영어과 교수보다 공대 교수가 영어의 국가경쟁력을 더 강조하는 이상한(?) 프로그램이 됐다.
한국과 같이 부존자원이 적고 국토가 좁은 나라가 살길은 세계와의 무역과 교류를 통한 세계화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한국과 같이 작으면서도 경제적인 위상이 높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나라는 네델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의 유럽국가와 이스라엘,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영어가 자국의 언어와 함께 아주 자유롭게 구사되고 있다는 데 있으며, 경제 및 국가의 활동이 국가의 크기와 상관없이 세계화돼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 LG, 현대와 같은 기업은 세계 어디서나 그 제품을 볼 수 있는 세계적인 기업인데, 영어는 그들의 기업 운영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투자한 많은 외국기업들이 한국에서 영어가 좀더 보편화되기를 원하고 있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스포츠나 연예인스타들도 영어의 필요성을 체험하고 있다. 영어가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영어가 국가경쟁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국가적인 영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찬반양론이 맞서고 있는 것이 대학에서의 영어강의다. 지난 수년간 대학에서 일반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찬반양론이 엇갈려왔다. 많은 대학에서 일반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논란이 되고있다. 일반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다. 다양한 언어의 습득은 두뇌에 프로세서(언어구사장치)를 만드는데 있다. 이 프로세서들은 병렬로 연결돼 있어야 하며, 직렬로 연결돼 있어서는 안된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번역하려면 이미 늦다. 영어로 들으면 영어로 대답하고, 한국어로 들으면 한국어로 대답하는 두 개의 장치가 병렬로 있어야 한다. 이러한 두 개의 장치의 병렬화는 훈련이 돼야 하고, 영어는 영어로, 한국어는 한국어로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훈련에 의해 가능해진다.
영어 강의 때문에 발생하는 지식전달의 부족도 연구대상이다. 지식전달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영어강의의 목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영어강의의 목적은 지식의 전달 보다는 지식의 토론에 있다. 학생들이 그룹토의를 통해 영어로 자유롭게 발표 하도록 수업을 유도함으로써 영어토의와 회화에 자신감을 갖고 이를 졸업후 활용하도록 훈련하는데 목적이 있다. 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할 학생들에게 영어강의는 고통일 수 있다. 그러나 교육정책은 전체적으로 국가의 목표가 어디를 지향하는가를 생각해야 하기에 구분적인 정책을 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학생시절은 영어가 필요한 직업으로 자기가 나가게 될 지 그렇지 않을지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 배우려고 한다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언어는 가능하면 일찍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와 국가경쟁력, 영어강의를 놓고 아직도 토론의 여지가 있고 방법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점차 세계화로 인해 기업, 교육, 문화, 경제, 외교 모든 분야에서 세계와 교류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이 시점에서, 작은 국가로서의 강소국을 지향하는 한국으로서는 반드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