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에서든 쉽게 뿌리 내리지 못한 나무는 곧 잊힐 것이다. 오뉴월이 와 무성해진 잎들이 다른 가지를 넘나들 때면 그 나무는 완전히 주변에 잠식되고 말 것이다. 있으되 없는 나무가 되고 만다. 뿌리가 약하거나, 강한 기 때문에 쉽게 그 땅에 안착하지 못하는 나무는 봄이 와도 나목으로서의 제 수치를 감내해야만 한다. 기실 그 나목은 죽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밑둥치 잘려나갈 운명이 예고되어 있다.
사람의 나무도 다르지 않다. 어떤 의문 앞에서 정의를 내리거나 명답을 얻는 건 무척 어렵다. 거기서 최선이나 차선의 길을 수용할 때 우리는`순리를 따른다`고 한다. 순한 이치나 도리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세상과 타협한다.
그 타협조차 받아들일 의지가 없거나 그 타협보다 자의식이 강할 경우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다수가 옳다고 하는 그 명제 앞에서 내 힘이 받쳐주지 않거나, 내 강박이 우선이면 쉽게 나무들 세상에 안착하지 못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섬이 되었다, 바람이 되었다 하는 게 사람의 나날이다.
내 안의 핍진이나 질곡, 내 안의 거품이나 고집, 이 둘 다를 버리지 못할 때 봄 깊은 저 사람의 마실에서 쓸쓸히 나목이 되어 제 수치를 견뎌내야 한다. 혼자 부는 바람도 없고, 홀로 크는 숲도 없다. 혼자 푸른 언덕도 없고, 홀로 꽃 피우는 나무도 없다. 한 호흡의 양심, 한 손길의 애정, 한 눈길의 의심, 한 모금의 불안, 이 모든 것들이 삶을 이루는 주체이다. 세상만사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최선의 아름다움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봄은 오고 계절은 저리도 깊어만 간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