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북한이 진정으로 `국가의 존엄`을 지키려면

등록일 2013-04-22 00:10 게재일 2013-04-22 22면
스크랩버튼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북한이 개성 공단의 근로자까지 철수시킴으로써 명맥만 유지되던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돼 버렸다. 북한 당국은 대화 단절의 이유로 그들의 `국가 존엄`을 훼손했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김정은 체제 등장이후 북한당국은 전 세계인들의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장거리 미사일과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러고는 북한당국은 한미 군사 훈련을 문제 삼아 대미 대남 선전포고 등의 강경발언을 연일 쏟아내면서 한반도를 긴장시키고 있다. 존엄 모독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며, 우리의 대화 제의까지 거부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국가 존엄`을 모독했다고 나열하는 항목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개성 공단 관련, 남한 언론이 “북한이 연간 8천700만 달러에 달하는 개성공단 수입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한 내용은 국가 존엄을 심히 훼손했다는 것이다. 남한의 보수 단체들이 북쪽을 향해 뿌린 전단은 수령에 대한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고 흥분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지난번 국내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의 사진을 사격 표적지로 사용했다고 극도의 격앙된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북한 당국이 이러한 `국가 모독`을 항상 금기시하는 이유는 간단히 알 수 있다. 북한은 수령이 영도하는 당과 국가가 통합된 유일 체제이다. 그러기에 국가 모독은 곧 수령모독으로 직결된다. 시대는 저만큼 앞서가는데, 북한사회는 봉건 왕조처럼 `짐이 곧 국가`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최고 지도자에 대한 모독은 신성모독이며, 내가 만난 고위층일수록 격분하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 체제 내에서라면 이같은 최고 존엄 모독죄는 강제 수용소에 직행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 밖의 외부세계에서 그들 체제나 지도자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사(修辭, rhetolic)로 거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당국은 일찍부터 `수령 옹위 3대 기둥`으로 당·군대·인민이라고 선포했다. 그러한 체제에서 그들 국가나 지도자에 대한 인민들의 비난은 최대의 불경죄에 해당된다. 물론 이를 통해 내부 인민들을 통제 단속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북한 당국이 이번 사태에 대해 `전면적 군사적 보복`을 선언하고, 국방위원회, 외무성, 조국 평화 통일 위원회, 인민군 총참모부등이 경쟁적으로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 해전 방북때 김정일 위원장의 `위대한 공적`을 격앙해 외치던 어느 여성 간부의 생각이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자신들이 숭상하는 `국가의 존엄`인 `최고 존엄`을 존중받길 원한다면 먼저 북한 체제를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국가 존엄`을 원천적으로 보장받으려면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하루 빨리 건설해 굶주리는 주민들의 식량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북한은 최소한 `불량국가`나 최근 이코노미스트가 말하는 `가장 역겨운 정권(nastist regime)`이란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는 북한이 그러한 정상적인 구가를 만드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북한이 `최고 존엄`의 가치를 존중 받으려면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동시 제의한 대화에 조건 없이 즉각적으로 응해야 존엄을 보장 받는다. 대화의 테이블에 앉은 상대를 비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외교나 협상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선전적이고 전투적인 거친 언어부터 정상적인 말로 바꾸어 대화에 임해야 한다. 중앙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북한 아나운서를 통해 발표되는 감정적인 욕설부터 정상적인 언어로 순화해야 한다. 언어 자체가 인격이며, 품격 있는 언어가 존엄이기 때문이다.

시론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