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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의 나비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4-17 00:10 게재일 2013-04-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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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세 살까지는 살 것이고, 듣지 못해 미칠 것이며, 간호사가 해칠까봐 앙탈을 부릴 것이다. 가족들에게도 끝없는 괴로움을 안겨 줄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노년에 대해 비관적으로 서술했다. 어릴 적 보았던 자신의 할머니의 노년기를 고스란히 자신에게 투영했다. 스스로의 악담대로 그녀는 노년을 맞았다. 차츰 정신을 잃어갔고, 간호사의 도움을 거부했으며, 제멋대로 행동했다. 자신의 어두운 내부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목사관 살인 사건`, `패팅턴 발 4시50분` 등 아가사 크리스티의 몇몇 작품에 나오는 아마추어 탐정 이름은 `미스 마플`이다. 마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뜨개질이나 수다로 하루를 보내며 늙어가는 노처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날카로운 관찰력과 경험에서 오는 직관의 힘 때문이다. 미스 마플을 접할 때마다 아가사 크리스티 자신이 투사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보곤 하는데, 그녀의 간단 평전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불꽃 같이 산 그녀지만 크고 작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남편의 바람기가 원인이 된, 자작극 성격의 실종과 그로 인한 기억을 놓아버린 일은 결점과 균열투성이 그녀 인생의 상징적 코드가 되어버렸다. `멋지게` 인생을 탕진하고 죽은 아버지, 가난 속에서 집착적 사랑을 쏟는 엄마, 예견된 결핍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가 아니었을까.

평화로운 세상을 원했으나 욕망 또한 완전히 놓아버릴 수 없었던 그녀의 삶은 늘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웠다. 어린 시절 누군가 산 채로 잡아서 모자 깃에 꽂아준, 몸서리치는 나비의 날갯짓을 기억하는 일, 그 섬세한 통증 하나하나를 지우기 위해 작가는 플롯을 짜고, 등장인물을 만들고 마침내 미스 마플 같은 매혹적인 해결사를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현실적 삶이 굴곡 많았기에 책 속의 미스 마플은 그토록 빛날 수 있었다.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빛나는 인물은 창조된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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