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잡화상의 딸로 태어나 첫 여성 총리이자 12년 총리였던 마가릿 대처가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철의 여인`(the iron lady)으로 추앙받았던 그는 은퇴 후 10여년 전 남편을 잃고, 기억 상실증의 병상에서 고독한 황혼을 보냈다. 그의 쌍둥이 남매 중 환갑이 다된 독신의 딸 캐롤은 임종 때까지 그와 화해치 못하고 병상을 찾지도 않았다. 세계의 정치인으로서 한 시대 명성을 날린 그였지만 가정적으로는 매우 불행한 말년을 보낸 셈이다.
보수당 당수로서 세 번이나 총선에서 승리해 고질적인 `영국병`을 치유한 공적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최강의 노조인 영국 노조와의 대결에서 원칙을 지키면서 승리해 영국의 질서와 법을 회복시켰다. 또한 노동당의 집권때부터 얼룩진 국유 기업, 공기업을 민영화해 경제의 활력을 불어 넣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빗발치는 반대 여론을 그는 `영국 재건을 위한 신념과 원칙`으로 잠재워 버렸다. 특히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미국의 협상제안이나 국방 장관의 건의도 물리치고 상륙작전을 감행해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그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영국병을 치료해 꺼져가던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그의 리더십은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리더십은 청소원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악취로 뒤덮인 런던거리를 정화시키고, 고수익을 찾아 미국으로 계속 떠나던 전문직 이민까지 서서히 소멸케 했다. 그의 리더십은 원칙을 내세운 오만과 독선의 리더십과는 완연히 다르다. 강력한 추진력과 비전을 바탕으로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그의 뚝심은 국민적인 신뢰의 리더십으로 승화됐다. 대처는 사라졌지만 그의 대처리즘이 아직도 살아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도 대처 당시의 영국처럼 치료하기 힘든 `한국병`을 앓고 있다. 분단 모순에 따른 `안보 불안 병`, 과잉이 우려되는 `복지 기대병`, 여기에 더해 한국 특유의 `조급증`이라는 병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도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이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처리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국병을 치료하는데 사용하길 바란다. 한국의 보수 정권이 기득권의 유지나 보호에 얽매일 때 한국의 고질병은 결코 치료될 수 없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대처식 리더십이 한국병 치료용으로 사용되길 바란다.
우선 박근혜 정부는 안보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대북 정책에서부터 대처리즘에서 그 교훈을 찾길 바란다. 아르헨티나와의 영토 분쟁에서 보여준 대처리즘의 리더십은 대북 정책에서도 원용할 필요가 있다. 정권에 따라,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임기응변적인 대북 강온 정책은 장기적 신뢰의 정책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한반도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대북 신뢰 프로세스에 반드시 담아야 할 원칙이다. 또한 유럽의 일원이면서도 범유럽과 차별되는 영국적인 자주성을 개척한 대처식 외교를 우리의 4강 외교에도 접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나온 포퓰리즘적 복지 공약때문에 우리 경제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대처 당시의 영국식 `복지 병`을 보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복지 혜택을 줄이자고 호소했던 대처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할 필요는 없을까. 영국의 정치 갈등을 봉합한 그의 리더십의 핵심은 복지국가의 품에 안겨 무책임해진 국민에게 책임감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무섭게 퍼져가던 영국병을 소신과 원칙으로 치유한 게 바로 대처리즘이다.
우리도 그의 리더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에게 만연한 한국병이 치유하길 간절히 바란다. 하느님 품으로 멀리 떠난 그의 명복을 빌어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