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선거 끝 난지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벌써 대선공약 수정론이 대두되고 있다. 정부 여당의 정몽준 의원과 이한구 총무 등 책임 있는 인사들이 지키지 못할 공약은 사과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부터 잘못된 공약은 출구전략을 미리 세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보수 언론에서도 `역대 대통령 중 공약을 다 지킨 대통령이 없다`는 논리로 이를 두둔하기도 한다. 물론 대선 후보의 공약은 다소 부풀려 질수도 있고, 포퓰리즘적 성격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약집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공약 이행 불가능론을 제기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 위반이며, 정치 도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박 당선자는 1998년 정치 입문 후 계속 신뢰·약속·원칙의 정치를 강조했다. 인수위가 공약 실천 방안을 마련 중인데, 당 중진들이 예산 부족 등을 내세워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한다는 주장은 당선자의 정치 신념에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박 당선자는 시종일관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하고,“지키지 못할 공약은 발표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 상당한 공감대를 얻어 당선됐다. 특히 박 당선자는 공약집에 제시된 201개 공약을 위한 135조원의 예산은 “재원 대책 등 현실성을 꼼꼼히 따진 뒤 내 놓은 공약들”이라고 거듭 강조했기에 상당한 신빙성도 있다.
그러므로 박 당선자의 공약 후퇴와 수정이 아닌 공약 준수는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특히 51대 48이라는 민심의 양분구도 하에서 공약의 실천은 국민 대통합의 전제이며, 민습 수습의 방도이기 때문이다. 5년 전 500만 표 이상으로 압승한 이명박 대통령도 집권 초반 진보적인 청년 학생층의 저항에 부딪쳐 국정의 마비현상까지 초래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공약의 취소나 수정은 박 당선자의 노령 연금과 의료 혜택 공약을 믿고 지지한 취약층과 50~60대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다. 대통령 취임도 하기 전 집권 여당의 공약 수정이나 출구 전략 운운은 출발부터 박근혜 정권의 신뢰와 도덕성에 엄청난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마침 인수위가 여권의 공약 후퇴 논의는 국민을 혼란시킨다고 쐐기를 박고, 어제 선거 대책위 간부 모임에서 박 당선자 자신도 공약 실현의지를 재천명했다. 무척 다행스런 일이며 박 당선자의 약속이행에 대한 실천의지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새누리당과 박 당선자는 당내와 행정 관료들의 우려의 소리를 경청하면서도 공약 실천 로드맵을 서둘러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공약 후퇴 논의는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에 대해 포퓰리즘적 공약이라고 비난했던 새누리당의 자기모순이며, 이율배반이다. 공약과 책임은 별개라는 구태적 현실 정치의 논리는 정치적 불신과 정치적 허무주의를 양산할 뿐이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약속된 공약을 반드시 실천하고, 어려움이 있을시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약속정치와 책임정치의 구현모습이다.
그러므로 인수위는 이 시점에서 공약의 실천과 이행이라는 전제위에서 새 정부의 밑그림을 충실히 그려야 한다. 공약 이행에 있어서 예산의 뒷받침이 문제라면 이에 대한 지혜를 백방으로 모야야 할 것이다. 예산 절감이 어렵다면 합리적인 증세 방안이나 공약의 우선순위에 관해 솔직하게 털어 놓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순서다. 공약의 실천은 약속과 신뢰를 강조하는 박 당선자의 실천 의지만이 아니라 당정 관료들의 적극적인 지지도 수반돼야 한다. 박 당선자의 최대 과제는 기득권 유지와 기회주의적 관료주의를 혁파해 공약 실천을 국정의 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일이다. 그것이 박 당선자의 신뢰 정치의 구현이며, `대통합의 정치`와 `국민 행복시대`를 여는 출발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