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도시 살찌우는 창조적 활동 장려하도록<br>지역문예부흥에 앞장선 문인들 작품·자료 모아<br>후손에게 물려줄 색깔있는 `문화사랑방` 만들자
지역마다 그 지역 고유의 유산들이 지역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초월해서 숨쉬고 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형태이든 보이지 않든 지역민들의 정서를 만들고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문화 형태로 자리잡게 한다. 그 중에서도 문학은 지역과 시대적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스러지지 않는 유산이다. 그 유산을 담는 그릇이 문학관이다. 삶의 모든 것을 문학이라는 형태로 엮으며 수없이 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지역 문인들의 업적을 한데 모아 외부로부터는 지역의 가치를, 지역민들에게는 자부심과 긍지를, 그리고 문인들에게는 더욱 열의 있는 창작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포항지역에서도 자치단체와 지역 문인들 사이에서 문학관 건립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문인들의 기대를 부풀게 한다.
일찌감치 문학관의 필요성을 인식한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서둘러 문학관을 설립, 그 지역의 자연 경관과 각종 특산품과 연계해 문화적 홍보를 효과적으로 벌이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춘천의 김유정문학촌, 원주에 토지문학관, 봉평에 있는 이효석문학관과 생가, 그리고 인제 백담사에 만해기념관이 있고 전국 곳곳에 채만식문학관, 청마문학관, 한국현대문학관 등 현재 21개소가 한국문학관협회에 등록돼 있다. 전북은 지난 2004년에는 총 사업비 50억원을 들여 소설 `혼불`의 주무대였던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혼불문학관을 건립했고 이웃 경주시도 4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진현동 일원에 전통골기와 양식으로 목월문학관을 건립했다.
포항 지역에도 후배 문인들로부터 문학적 스승의 자리를 지키고 또 전국적으로도 문인의 이름을 당당히 새긴 훌륭한 문인들이 많다. 고 재생 이명석 선생, 고 한흑구 선생, 고 손춘익 선생과 지난 2003년 작고한 고 춘강 빈남수 박사가 대표적 인물이다.
고 재생 이명석 선생(1904~1979)은 영덕 삼사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포항지역의 문학과 미술, 연극, 음악 등 다양한 문화예술의 무대를 유치했으며 당시 문화단체가 전무했던 시절 불모지에 가깝던 이 곳에 문화원을 설립하고 도서관 건립운동을 펼쳤으며 지역 최초의 문화제인`개항제(5월 시민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해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포항시민의 노래`를 작사하기도 했다. 그의 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포항문인협회는 포항시 북구 수도산 내에 문화공덕비를 세우고 매년 9월 재생백일장을 열고 있으며 어느새 올해로 15회째를 맞이했다.
보리를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수필`보리`의 작가인 한흑구(1909~1970) 선생은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 수필문학이 자리를 굳히는데 크게 이바지한 인물로 특히 포항 지역에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45년 월남해 수필창작에 주력하던 선생은 1948년 서울에서 포항으로 이주, `이마지스트의 시운동`, `흑인문학의 지위`등 미국문학 및 작가론에 대한 평론을 발표하면서 1958년부터 1974년까지 포항대학(전 포항수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현대미국시선`, 수필집 `동해산문`과 `인생산문`을 펴냈다.
그리고 지난 2000년 9월 작고한 동화작가 손춘익(1940~2000) 선생은 1940년 포항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지키면서 지역 문학 발전과 동화 창작에 힘썼던 고집스런 문인이었다. 1966년 조선일보와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돼 등단한 이후 1974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죽음의 길`을 발표하면서 아동문학가이자 소설가로서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세종아동문학상(1972), 소천아동문학상(1982), 경북문화상(1982), 제10회 방정환문학상 소년소설부문(2000)을 수상했으며 `포항문학`창간 편집인, 포항간호전문대 강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및 아동문학분과 위원장을 지냈다. 그리고 선생의 저서에는 어촌 소년의 꿈과 희망을 그린 장편동화 `푸른바다 저 멀리`, 성장동화 `땅에 그리는 무지개`를 비롯해 동화집 `작은 어릿광대의 꿈`, `힘센 할망과 꾀 많은 하르방`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추억 가까이`, 소설집 `작은 톱니바퀴의 연가``이런세상`, 수필집 `꽁보리밥과 찬 우물물`, `코끼리의 코, 무수막`등을 출간, 끊임없이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한 평생을 보냈다.
수필계 원로 춘강 빈남수(春江 賓南洙·1927~2003) 박사는 1927년 경남 사천시 곤양면에서 태어났다. 1952년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1969년 아내를 잃은 자신의 심정을 글로 쓴`상처 휴유증`을 발표하며 수필계에 등단했다.
1976년 2월 당시 포항종합병원(동해의료원) 내과과장으로 부임한 빈 박사는 80년 포항에서 빈내과 의원을 개원한 후 의료활동을 펼쳤다.
`포항문학`창간호를 발간했고 예총포항지부와 포항문인협회·형산수필문학회·안행수필문학회 등 예술단체 창립에 깊이 참여하며 수필가 한흑구 선생, 아동문학가 손춘익선생, 수필가 박이득선생과 더불어 포항 문예부흥운동에 앞장섰다.
1975년`괄호 밖의 인생`,`망각의 이방지대`를 발간한 빈 박사는 1996년 고회를 맞아`고희 기념문집`을 발행했다.
1989년 한국수필가협회 수필문학상과 1990년 경북도 문화상을 수상했다. 2003년 8월 23일 오후2시30분 향년77세로 별세했다.
이미 떠나간 문인들에게는 아마도 욕심이 없을 것이다. 삶을 고스란히 글로 적고 뜻을 확산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손들은 욕심을 부려야 한다. 난관이 있더라도 그들을 기리는 문학관을 설립하고 그들의 작품세계와 그들이 살아갔던 시대를 한데 모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후손들에게도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공원이나 근사한 축제 못지 않게 큰 예술가를 둔 지역의 가치도 높다. 수려한 자연 경관을 지니고 세계적 기업인 포스코가 있는 인구 53만명에 이르는 포항에 정신적 유산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문학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경제적인 발전과 정신적인 발전이 잘 어울어지면 문화도시로의 꿈은 저절로 이루어 진다. 더 늦기 전에 지방 자치단체와 지역문인들, 그리고 시민들이 뜻을 모아 포항문학관을 건립하고 흩어져 있는 자료를 수집해 문화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심도있게 모색할 시기이다.
“작품·역사 아우른 종합문학관 필요”-포항에 문학관이 건립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가.
◆지역인들의 삶을 노래했던 지역의 문인들의 모습을 한 곳에 모아보는 작업은 참으로 의미로운 것이다. 문인의 개인적 업적을 정리한다는 뜻도 있지만 그 작품들을 통하여 그 지역과 시대마다 그 땅을 지키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수없는 고민과 탐구의 산물인 주옥같은 작품은 우리 지역민들에게는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줄 것이며, 외부인들에게는 우리 지역의 문화적 위상을 들어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포항 작고 문인의 작품과 지역문학사를 아우르는 종합문학관의 형태는 어떠한가.
◆바람직하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꼭 작고 문인 중심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종합문학관 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지는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종합적인 지역 문학관으로 조성돼야 한다. 다른 지역과 달리 우리 포항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진 문학사를 정리하는 문학관도 좋겠다는 말이다. 우암, 노계, 다산, 농소, 여헌 선생 등, 많은 문인들이 포항 지역에서 포항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한 역사 속의 인물들과 작품도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현대에 와서는 물론 작고 문인과 이 지역에서 활동했거나 이 지역 출신의 문인들을 인물과 작품 별로 정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꼭 경계해야 할 일은 한 인물에 대한 문학관과 달리 종합적인 문학관이기 때문에 인물 선별에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냉정하게 기준을 정하여 문단이나 작품성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친 인물에 한정하여야 할 것이다. 인정에 이끌리거나 엉뚱한 사람의 소리에 휘둘리다가는 문학관의 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항문학의 개성을 살리고 지역 문화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세부 방안이 있다면.
◆포항은 역사나 자연환경면에서 한국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외적의 침입이 가장 잦았던 곳이며, 그래서 자연스럽게 국토방위를 위한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일본과의 교류와 전쟁의 반복은 가히 대일관계사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변방으로서의 애환 또한 만만치 않았으며, 그 상처가 고스란히 지역민들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고 볼 수 있다. 자연환경면에서 도시, 어촌, 산촌, 농촌과 강가의 삶이 모자이크처럼 한 곳에 집중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단도 있다. 작가 입장에서는 이만큼 좋은 조건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작가들이 포항으로 찾아와서 작품 활동을 하거나 소재를 얻어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다면 지역 문화 발전을 물론이거니와 한국 문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바다문예창작촌` 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아울러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이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작품화할 수 있는 장려책도 필요하다. 지역에 대하여 애정도 없는 사람보다는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이 지역을 노래한다면 정성과 애정이 담긴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간혹 지역에 관한 작품이 그냥 한 번 재미 삼아 놀러왔던 사람이 가볍게 써 놓은 것일 때는 정말 자존심이 상하곤 한다. 문학관이 들어서면 그런 점도 자연히 해소되리라고 본다. 문학관을 중심으로 지역 문인들의 무게 있는 작품도 양산될 것으로 보아지기 때문이다.
-장소나 건립시기 추정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장소는 포항의 풍광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역이 좋을 것 같다. 우리 지역민만이 드나드는 곳이 아닌 외지인들도 찾아와서 문학관뿐만 아니라 포항의 모습까지 볼 수 있게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예를 들어 장기목장성에 관해서 작품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인데 거의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문학관도 지금 서둘러도 자료 구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예산은 어떤 규모로 짓는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단 시민들, 문인들과 시간을 갖고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친 뒤에 결정하는 게 좋을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