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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95세 학생의 새해 소망

등록일 2013-01-07 00:20 게재일 2013-01-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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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 가을 학기, 95세 학생이 나의 강좌를 수강했다.

물론 그는 정규 대학생이 아닌 우리 대학의 명예 대학생으로 등록한 학생이다. 이 노인 학생은 외형상으로는 70대 정도로 보이고, 악수를 청하는 손아귀에는 아직도 무척 힘이 들어 있었다. 이 노인 학생은 10남매가 모두 출가해 손자·증손자 까지 전 가족이 121명이라고 자랑 했다.

그는 수업에 빠짐없이 참여했고 강의에 대한 집중력도 대단했다. 이번 학기에 딱 한번 결석한 적이 있는데 그는 결석 사유까지 나에게 밝힌바 있다. 그는 분명 내 교직 생애에 최고령 학생임에 틀림이 없다. 정규 학교의 문 앞에도 간적이 없다는 그이지만 수업에 대한 열성은 대단했다. 늘 앞자리에 앉는 그는 쉬는 시간에 나에게 질문도 하고, 강의에 대한 소견을 솔직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하면서 그 95세 학생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그의 평소 건강관리에 관해 물어 보았다. 그는 아직도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지지 않고 1시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한단다. 그의 집이 대학 캠퍼스 가까이에 있어서 운동하기가 편리하다고 흡족해했다. 또한 그는 시내 볼일이 있으면 대부분 버스를 타지 않고 걷는다고 자랑했다. 운동 후 식사를 하면 밥맛이 아주 좋다는 이야기까지 덧 붙였다. 건강 유지에는 꾸준한 운동이 필수적임을 알면서도 그 실천이 어려운 현대인들이 꼭 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나는 이 노인이 이토록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육체적인 운동에 못지않은 그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하루의 생활이 모두 즐겁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매일 공부하고, 일정한 시간에 식사하고 설거지까지 스스로 한다는 것이다. 바쁘게 살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지난 선거과정에서 정치인이나 유권자들이 서로 욕하고 대립하고 하는 모습에 그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제 몸 가누기 힘든 구순에 나라의 앞날 까지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나는 그의 도전적인 삶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무료하게 보내는 상당수 주변 노인에 비하면 그는 아직도 청년처럼 도전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는 벌써 10년째 이 대학의 문학, 역사, 정치관련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이도 부족해 서예학원에 다니며, 손수 쓴 표구를 나에게 자랑한 적이 있다. 그는 몇 해 전 미국에 살고 있는 딸 집을 혼자 다녀왔다면서 독일인 사위 자랑을 했다. 미국에서 본 유태인들의 공동체적인 삶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삶이 그의 뇌를 건강하게 해 치매예방뿐 아니라 그의 건강까지 지켜준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새해 소망을 거창하거나 큰 것이 아닌 오늘과 같이 열심히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노인의 건강과 날씨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현 상태에서 그는 분명히 백수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우리 사회에 언제 부터인가 `구구 팔팔 이삼사`라는 말이 퍼지고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년 내에 죽는다는 웰 다잉(well-dying)의 슬로건이다. 그는 분명히 내년에도 대학생으로 등록하고, 아침운동을 하면서 평소의 낙천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이어갈 것이다.

95세 노인 학생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는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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