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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뒤로한 오감이 숨쉬는 곳으로 오세요”

이창훈기자
등록일 2012-12-31 00:07 게재일 2012-12-3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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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호 패션디자이너가 운영하는 1천300여평의 갤러리<br>미술전시·공연 등 개최, 직접 디자인한 옷·소품도 판매<br>“시골의 아늑한 공간서 대중과 함께 소통하고 싶어”

청도 펀앤락갤러리대구에서 소문난 명품 드라이브길 중의 한곳이 달성군 가창댐을 끼고 헐티재를 지나 청도군 각북으로 연결되는 도로다. 이 도로는 봄에는 화사한 벚꽂이,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나들이 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길은 대구에서 멀지 않고 가는 길 내내 아름다운 풍치가 이어져 별장을 비롯, 전원주택 등이 밀집돼 있다. 특히 헐티재를 지나 청도군 각북면에는 최근들어 크고작은 갤러리 6개가 들어섰다. 비슬갤러리, 아자방갤러리, 이복규 심갤러리, 에다소소갤러리, 비슬문화촌갤러리, BK 최복호 갤러리 등 한 개의 시골면에 갤러리가 이만큼 많은 것은 아마 처음일 듯 싶다. 그만큼 도시민을 끄는 매력이 있어서일 게다.

그 중의 한 곳이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 B.K갤러리다. 그는 이곳을 펀앤락(FUN 앤 )이라고 이름지었다. 편하고 즐겁게 즐기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 부른다. 펀앤락으로 가는 길은 고요하다. 며칠전에 내린 눈으로 군데군데 잔설을 감상하면서 가는 내내 마음은 편안하다.

지역의 패션 거장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일 것이다.

펀앤락에서의 공연장면. 인간관계로 맺어진 유명가수를 초청, 정기적인 공연을 열고있다. 상단 인물사진은 최복호 패션디자이너 모습.

산중의 갤러리 `펀앤락`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 비슬잔 자락에 위치한 패션디자이너 최복호의 패션연구소. 패션연구소, 갤러리, 펀앤락 등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다. 1천300여평의 널찍하고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은지 이미 4년6개월이나 됐다. 집주변에 제법 큼지막한 사과나무들이 손님들을 반기고 있다. 건물내부에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 한 옷, 스카프, 주얼리 등이 진열돼 있다. 이날 인근의 손님들이 점심예약을 해 직원들이 세팅하느라 분주했다. 정식 식당은 아니지만 손님들이 요구하면 간단한 시골음식을 준비해 준다고 했다.

자연을 말하고 시절을 논하는 그의 언동에는 거침이 없다. 무엇에건 속박되길 싫어하는 사람 특유의 낙천성 같은 게 산중 일상을 짱짱하게 밀어붙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패션 디자이너가 산중에 아지트를 마련했다 함은 자못 이색이다. 갤러리에서는 미술 기획전 내지는 상설전이 열리고, 야외공연장에서는 다양한 콘서트가 펼쳐진다. 커피숍과 매장을 설치하여 비즈니스도 하고있다. 이처럼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연구소를 굳이 산중에 꾸민 것은, 사람이란 결국 자연의 형제라는 인식에 추동된 탓이다. 그는 자연주의자를 표방한다. 자연과 패션의 접목, 이게 화두라는 얘기.

사업상 대구시내에 사무실과 집이 있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고령군 우곡에서 16년간 전원생활을 했다. 그곳에서 부부들을 초청해 주말파티를 열어 담론을 개최하다 이곳의 매력에 푹빠져 옮겨왔다.

“나이들면 갈때가 있어야지. 복닥거리는 도심을 빠져나와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져. 인간사의 번뇌를 뒤로하고 지인들과 담론을 즐기면서 사는거야. 말 그대로 갤러리지”

그는 이곳을 이익창출이 아닌 문화창출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여유로운 오감이 숨쉬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공연과 담론, 재미가 이어지는 곳”

그는 인근에 터전을 잡은 전유성과 상의해 공연을 열기로 했다. 최백호·정훈희·유열·노사연·김도향·임지훈·유익종 등이 공연을 했다.

도심에서 비싼 개런티를 주고는 엄두도 낼수없다. 그동안 맺어진 인간관계속에서 흔쾌히 응해준 덕분이라고 했다.

한적한 시골 구석에서 개최했지만 공연때면 매번 300~500여명의 손님이 몰린다고 했다.

“이게 바로 소통이지. 시골에서 여는 작은 음악회지만 몰리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디어에 따라 문화의 중심을 변화시킬수 있다는 것을 느겼지. 말그대로 편안하고 즐겁게 소통의 공간을 만들려는게 내 생각이지, 다른 욕심은 없어”

고객의 놀이터로 만드는게 목표

최복호는 말이 필요없는 지역의 유명디자이너다. 그는 디자이너인 동시에 사업가다. 그는 사업가는 누구나 할것없이 칼날위를 걷는 존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직원만도 80여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이렇다 보니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고 판매까지 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구나하고 느껴진다.

현재 국내 패션 시장은 사정이 좋지않다. 유럽시장이 흔들리면서 특정지역 할 것 없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패션의 도시였던 대구의 하락은 눈에 띄게 늘었다. 대구 패션의 대들보 같은 존재였던 최복호는 `가치의 다변화`를 위기 극복의 키워드로 제시했다.

“하위산업을 상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생각해. 나의 가치를 다변화하는 것이 중요한 거지. 치열하게 연구하고 창작품을 만든후 마케팅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돼” 백화점 유통 채널만 가지고 있던 최복호 패션이 홈쇼핑으로 유통망을 늘리면서 사업영역을 많이 확장했다. 이것이 바로 최복호의 가치를 다변화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가치의 다변화는 자신의 가치를 다양한 산업에 투과시킴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키는 것. 이는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아이덴티티를 지키되 이를 변형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주요 포인트다. 펀앤락도 이런 맥락차원에서 만들어졌다. 펀앤락은 상업성을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다. 여러주민과 지인, 고객들이 시골의 아늑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대화하며 담론을 주고받는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것.

옷은 판매돼야

“옷은 작품이 아니다. 무조건 판매되어야 한다. 박물관에 전시하려고 만든다면 의식주의 `의`라는 개념을 상실해 버린 것이지. 디자이너는 시장을 알고 사회 전반적인 현상을 알아야 해. 소비자와 소통하고 공감해야만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야”

아무리 좋은 옷을 만들어도 고객에게 외면받는 다면 디자이너로서의 대성이 어렵다고 말했다. 즉 디자이너는 실력과 아울러 고객과도 어울리는 소통의 마인드를 먼저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객으로부터 신뢰가 먼저 구축되면 판매라는 마케팅으로 자연적으로 연결이 된다고 강조했다.

“세상은 물흐르듯이 살아야 하는거지. 모든 것을 억지로하면 무리가 따르고, 문제가 생기는 거야. 디자이너 생활도 마찬가지야. 너무 조급해 하지말고 착실해 내공을 쌓아가야 돼.”

그리고 디자이너는 갈망하는 자세와 염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역시 아직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다. 한 곳에 안주하지 않는 자세가 지역 패션계의 부흥기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고있다.

“세상은 진행형이고 성공작은 없어요. 나는 문화가치를 파는 장사꾼이라서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팔려고 합니다. 색으로 풀고 간을 맞추며 비빔밥 패션으로 바이어를 유혹하고 있어요.”

▲ 펀앤락 전경. 청도군 각북면 비슬산자락에 위치해 있으나 정기적인 공연과 갤러리로 시골명소로 자리잡았다.

걸어온 길

“뭐든 가지면 가진 만큼, 주면 준만큼 번뇌도 비례해요. 분명한 건 마음이 가난하면 평화가 온다는 겁니다.” 최복호는 계명대 철학과를 다니며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목회자의 꿈을 키웠다. 패션계 입문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잘 만들고 언어구사력이 유별난 그의 남다른 개성을 지켜보았던 목사가 말했다. “너 앙드레 김처럼 유명한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게 어떻겠느냐?”

최복호는 그 길로 패션공부에 나선다. 1973년엔 `의처증 환자의 작품D`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19세기 유럽의 정조대를 차용한 것으로 현대의 뒤틀린 성 모럴을 야유했다. 당시 많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또 환경문제를 다룬 `고발 의상`과 `공해 오염 분해기 의상` 역시 현실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 도발적인 패션 퍼포먼스를 눈여겨 본 한국 패션계의 대모이자 앙드레 김을 키워낸 최경자가 최복호를 연구원으로 발탁했다.

서울에서 패션 수업을 마치고 대구로 돌아온 최복호는 지역의 젊은 디자이너들을 모아 `패션 아카데미`를 결성, 정기 컬렉션과 세미나, 연구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다.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대구패션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국내외에서 매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단청이나 탱화 같은 전통문양에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 디자인과 패션으로 서양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18개 나라에 22개의 매장을 운영한다.

/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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