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체 다양한 곳이 사람 사는 데인데, 다산을 둘러싼 인적 환경도 다를 바 없었다. 처음에는 제자들도 강진의 다산 토지를 잘 관리해주었다. 하지만 유배에서 풀려났다 뿐, 다산은 노론이 득세하는 중앙 정계에서 든든한 끈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실망한 제자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신뢰를 주지 못한 채 인간적인 한계를 보인 다산에게 제자들이 등을 돌린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다신계가 무신계(無信契)가 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학문적 소양이 뛰어났던 이청(이학래)과의 결별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다산의 수많은 저술에 지대한 편집자 역할을 했던 그는 의무만 강요하고 신뢰를 주지 않는 스승을 떠나 추사 김정희의 식객으로 자리바꿈하고 만다.
스승과 제자는 많지만 참된 스승과 제자는 드물다. 스승은 제자를 키우고, 제자는 스승을 세운다. 키우고 세우는 일은 쌍그네를 타는 것과 같다. 스승이 무릎에 힘을 실어 그네를 띄우면 제자는 그 기를 받아 온힘을 모아 그네 키를 높여나간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태풍 앞이라면 그네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태풍이 견딜 만한 것인가 아닌가는 그네를 잇는 동아줄이 안다.
스승으로서 자기 관리에 서툴렀고, 제자를 기르는데 미욱했던 다산을 보면서 슬픔보다는 위안이 되는 건 왜일까. 아마 학문적 깊이나 인품의 넓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약점 많은 인간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리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들, 오늘도 곳곳에서 위태로운 그네를 타고 있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