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그애를 몹시 사랑했지. 사랑이 뭐 별거겠어? 약품 매뉴얼을 들여다보는 안경 낀 모습이 귀엽게 보이고, 벙어리장갑을 떨어뜨린 그애를 위해 허리 숙여 장갑을 주워, 입구를 벌려 작은 손이 쏙 들어가는 걸 지켜보는 것. 뭐 그런 게 사랑 아니겠어. 너무 빨리 남편을 잃은 그애를 간호해주고 돌아오던 날, 남편은 차창을 짓누르는 어둠 속에서 생각하지. 먼 북쪽으로 가 약국을 열고, 작은 집에서 그애와 예쁜 딸을 낳고 살고 싶다고.
하지만 현실 속 그애는 약품 배달원과 결혼을 하고 떠나지. 남편 생일 때마다 의례적인 카드가 날아들지. 단 한 번도 `사랑을 담아`라고 편지 끝을 장식하지 않는 그애. 하지만 마지막 소식이 될지도 모를 카드엔 `사랑을 담아, 데니즈`라고 적혀있지. 몹시 애잔하지. 사랑을 담아,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애의 감정이 정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사랑에 빠졌을 땐 누구나 섣불리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지. 사랑을 놓아주고서야 우리는 쉽게 사랑이라 쓸 수 있지.
이런 얘기가 다는 아냐. 아내 올리브를 주목해야 돼. 매사에 빈정대고, 퉁명스런 그녀는 다정다감하고 우유부단한 남편더러 이렇게 말하겠지. 과부 위로꾼아,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올리브 키터리지`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야. 시작인`약국`편에서 주변인물로 나오는 올리브는 전형적인 주부상은 아냐. 독선과 상처의 심연 끝에 어떤 꽃이 피어날지 벌써 가슴이 따끔거려. 식탁 위 아프리카제비꽃, 그 청보라 꽃잎이 아직은 위태로워 보여. 자의식 강한 한 여자의 맵찬 삶이 저렇게 꽃잎 속에서 떨고 있어.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