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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2-11-30 21:52 게재일 2012-11-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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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 혼자서 되는 게 없다. 서로 돕고 배려해야 매끄러운 결실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누구나 주변의 도움 요청을 쉽게 거절하지는 못한다. 독선보다는 연민이, 이기심보다는 배려가 훨씬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제대로 거절하는 법을 배운 적 없으므로 착한 사람들일수록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떠맡는다. 그리곤 힘들어한다.

누구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 비치는 내 모습과 내 안의 실체는 다르다. 그 둘은 같아서도 안 된다. 페르소나와 실체가 같다면 이 사회는 엉망이 되어 버릴 것이다. 부드러운 관계를 위해 누구나 조금씩은 가면의 얼굴을 할 수밖에 없다. 이때의 가면은 절대 부정적이거나 위선적인 게 아니다. 명랑 사회를 위한 윤활유 역할이다. 하지만 너무 착해서 굴레를 자초한다면 그것 또한 욕심이 아닐까.

언제나 약지 못해서 힘겨워하는 후배가 있다. 스스로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타인의 요청엔 너그러우려니 몸과 마음이 고달프단다. 사회적 관계를 포기하고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다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여러 관계망들에 지쳐간단다. 모든 걸 놓아버리기엔 그동안 쌓아온`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허락하질 않는다.

소와 개의 우화가 떠오른다. 힘든 일만 반복하던 소가 개를 꼬드겨 탈출을 도모한다. 개는 목줄까지 벗어던진데 비해 소는 밧줄로 쓰겠다고 고삐를 달고 도망을 간다. 하지만 얼마 못가 돌덩이에 고삐가 걸려 꼼짝달싹도 하지 못한다. 자유로운 개는 저만치 도망가는데 소는 주인에게 곧장 붙잡히고 만다. 고삐라는 길들여짐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죄, 그게 소의 운명이다.

절실하게 원한다면 과감하게 고삐를 버려야 한다. 욕심이란 고삐를 달고 달리니 제 풀에 넘어지고 돌턱에 걸리고 만다. 되잡혀 멍에를 지느냐 도망쳐 기회를 잡느냐, 이 명백한 답 앞에서 어리석은 자는 망설이고, 현명한 자는 뛰쳐나간다. 단, 아직 지치지 않았다면 어리석지 않았으므로 계속해서 멍에와 고삐를 친구로 둘 지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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