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서 등록한 데생 기초반에서 그린 석고상 순서는 아그리파, 줄리앙, 비너스, 아리아스 등이었다. 단연 줄리앙을 그릴 때 몰입도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재능 없는 열정은 호기심 충족이라는 선에서 만족하는 게 옳다는 걸 깨쳤을 뿐이다. 그림 배우기를 접은 건 후회하지 않지만 줄리앙을 다시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서운했다.
누군가의 강연회에서였다. 사물을 제대로 보는 눈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그때 자료 화면으로 활용한 것이 줄리앙 석고상이었다. 한데 만날 보는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 옆면까지 비교 배치한 사진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제껏 내가 본 줄리앙은 앞면 또는 고작해야 약간 비스듬한 옆면 정도였다. 단 한 번도 뒷면을 그린다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리기는커녕 줄리앙의 뒷면이 있다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원래 전신상이니 미켈란젤로가 뒷면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
사물의 이면을 보는 눈을 익히는 것이야말로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다 끝난다면 안타깝지 않을까. 줄리앙의 뒷모습을 더듬어본다. 주름 사이에 파고드는 고독과 우수, 뽀글거리는 뒤통수 머리칼 밑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원형 탈모, 이음새가 터져나갔을 등쪽 갑옷선 등을 살필 때 그것을 제대로 보고 그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귀티 줄줄 흐르는 줄리앙의 실체는 그의 목덜미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우리는 그 사실을 놓친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