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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2-11-27 21:40 게재일 2012-11-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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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의 사전적 뜻은 `1. 흐린데 없이 밝고 환하다. 2. 유쾌하고 활발하다`이다. 한데 날씨가 명랑하다, 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걸로 보아 요즘에는 후자의 뜻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의 `명랑`은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

작가 소래섭 강연을 들은 후 그 사실을 알았다. 그의 몇몇 저서 중 단연 관심 가는 것은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이다. 작가에 의하면 적어도 일제강점기 때의 `명랑`이라는 낱말은 지금의 `유쾌하고 활발하다`라는 의미와는 좀 더 다른 의미로 쓰였다. 오늘날의 `건전`, `모범` 등의 단어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숨은 뜻은 `체제에 길들임`, `불온함을 용납 못함`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통치 권력의 입맛에 맞는 시민 길들이기가 당시의 `명랑`이란 말에 집약되어 있었다.

당시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인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도시 명랑화`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들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들을 퇴치하는 것이 경성 명랑화의 주된 모토였다. 명랑한 것이 아니면 모두 없애야 할 것들이었다. 거리 방역사업에 몰두하고, 분뇨 정비 사업을 벌였으며, 이만 명이 넘는 걸인 퇴치에 사활을 걸었다. 그리하여 길들여진 모범 학생을 만들고, 대중매체를 통제했으며, 불온한 행위는 퇴출시켰다. 불온한(?) 경성 전체가 명랑화 사업에 동원된 것이다.

강요된 건전과 부자연스런 절제가`명랑`이란 말로 포장되었던 당시 의식이 오늘날에 와서 완전히 고리를 끊었다고는 할 수 없다. 경성의 불온함을 허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개별자의 건전한(?) 불온을 허락지 않는 경직된 구조이다. 프랑스와즈 사강이 말했던가. 사회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통제를 위한 명랑이 아니라 개방을 위한 명랑일 때 `명랑`이란 말의 밀도 높은 진정성이 담보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명랑이란 말이 그다지 명랑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이 씁쓸함!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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