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심각한 고민은 아니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적응기를 지켜봐주기만 하면 된다. 전형적 모범생인 그녀 고민의 예는 이런 거다. 배가 고파 분식점에 들어간다 치자. 왠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시키면 분식점 주인에게 버릇없게 보일까봐 스스로 주방까지 걸어가 조심스레 주문을 한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어른을 공경하라고 배웠고, 될 수 있으면 그녀 스스로도 모범생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으니까.
그래놓고 본인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괜찮다. 한데 뭔가 대접 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면 고민거리가 된다. 어른에게 모범생이고 싶은 욕구와 손님으로서 대접 받고 싶은 당당함이 상충한 것이다.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어른들에게 먹히는 것이 싫은데, 자신도 모르게 그들이 원하는 행동에 길들여져 버렸다.
그래서 당당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부러 친구들과 삼겹살도 먹으러 가고, 물횟집에도 들러 본다. 뼈다귀해장국집 문도 열어 보고, 피자집에도 주문 전화를 넣어본다. 의연하게 소비자 역할을 시도해 본다. 의외로 아무렇지 않다. 어느 누구도 당당한 소비자 연습을 하는 열일곱을 질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어렵기만 하다면 그건 기성 사회의 잘못이다. 어른처럼 당당한 열입곱을 사회가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억압된 위선의 부산물이 모범으로 비칠 수 있는 사회라면 그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열일곱 살 그들에게 자연스런 당당함을 연습시키는 건 기성세대가 할 일이다. 의연한 소통 방식을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것은 플라톤을 배우고 공자를 익히는 것만큼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