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추운데 점심 약속마저 깨지게 돼 짜증이 났다. 하지만 별 소소한 일이 생기는 게 인간사인지라 덤덤하게 기다리기로 한다. 한데 사고 당사자 두 사람의 대처 방식이 극명하게 달랐다. 재미나면서도 씁쓸한 장면을 관찰하느라 추운 줄도, 배고픈 줄도 모르겠다. 조심스레 대화를 시도하고 다른 한 사람은 무조건 성가셔한다. 뭔가 말을 꺼내려는 한쪽에게 다른 쪽은 손사래를 치며 단박에 잘라 버린다. 보험사 담당자들이 오면 그들끼리 알아서 하면 된단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어디 더 흠집난데 없나하고 자신의 차에만 눈길을 준다.
군말 필요 없다는 택시 기사는 이런 일을 대처하는 확실한 매뉴얼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대화를 시도하려는 한쪽은 그 상황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식을 택한 경우였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 격인 내게도 전자는 그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후자는 필요 이상으로 미안함을 표시한다.`남의 시간 뺏어서 어쩌나, 오늘 하루 일진이 안 좋다고 생각해 달라` 등 나름 인간적인 해법을 취한다. 아무리 봐도 잘못은 `입 다물어`파가 더 큰데, 배려는 `수다쟁이` 파가 앞선다.
왠지 씁쓸했다. 배짱 좋게 뻗대는 노회함보다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시도하는 진솔함이 훨씬 보기 좋았다. 기계적이고 합리적인 사회 시스템을 따른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배려도 없고, 역지사지를 모른다면 그게 잘산다고 할 수 있을까. 흠집난 제 차를 살피는 것보다 맘 불편할 상대를 먼저 헤아리는 게 우선 아닐까. 꽃보다도 아름다운 게 사람이라 했거늘 차보다도 못한 게 사람이라면 어디 살 맛 나겠나.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