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의 유럽 여성들은 세상에 대한 대범한 호기심을 갖는 것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고급한 것은 남성의 차지였으니 독서 또한 남성 전용이었다. 따라서 책 읽는 여자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불온한 혐의가 짙었다. 이 불온한 자유주의자들은 가슴 속에 화약고 한 짐씩을 안고 살았다. 남성의 거울로 비추어볼 때 그 시대 여성의 독서는 백해무익한 것이었다. 세상을 지배하고 호령하는 것은 남성 고유의 영역인데, 더 많은 것을 여성과 공유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소수 엘리트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은 팽배했다. 종교 서적을 제외하고는 여자가 독서를 한다는 것은 천성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여성에게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구와 드넓은 우주 질서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았을까.
억누를수록 여성들은 유쾌한 고립행위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남성이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독서야말로 세상과 소통하는 멋진 통풍구라는 것을 안 이상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숨어서 책 읽는 여자들이야 말로 페미니스트의 원조가 아니었을까.
이제 여성에게 독서는 더 이상 위험한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책 때문에 불온해진 만큼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커진다면 그 보다 나은 독서의 진가가 어디 있겠는가. 덜 불온한 여성일수록 더 상처받는다. 상처 많은 여성들이 한 권의 책에서 힘을 얻는다면 이 또한 독서의 효용이 아니겠는가. 과감하고 불온한 독서일수록 그 파장은 크고 깊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