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불온한 독서

등록일 2012-10-18 20:45 게재일 2012-10-18 19면
스크랩버튼
책이 없었다면 여성들의 삶이 어땠을까? 인간사 이래로 여성 삶의 진일보를 담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독서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런 가정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책 한 권이 있다. 독일 작가 슈테판 볼만은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고 선언한다. 작가는 한 때 여성의 독서가 지극히 위태로운 것으로 취급받던 시대가 있었음을 고찰한다.

근대 이전의 유럽 여성들은 세상에 대한 대범한 호기심을 갖는 것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고급한 것은 남성의 차지였으니 독서 또한 남성 전용이었다. 따라서 책 읽는 여자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불온한 혐의가 짙었다. 이 불온한 자유주의자들은 가슴 속에 화약고 한 짐씩을 안고 살았다. 남성의 거울로 비추어볼 때 그 시대 여성의 독서는 백해무익한 것이었다. 세상을 지배하고 호령하는 것은 남성 고유의 영역인데, 더 많은 것을 여성과 공유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소수 엘리트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은 팽배했다. 종교 서적을 제외하고는 여자가 독서를 한다는 것은 천성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여성에게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구와 드넓은 우주 질서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았을까.

억누를수록 여성들은 유쾌한 고립행위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남성이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독서야말로 세상과 소통하는 멋진 통풍구라는 것을 안 이상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숨어서 책 읽는 여자들이야 말로 페미니스트의 원조가 아니었을까.

이제 여성에게 독서는 더 이상 위험한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책 때문에 불온해진 만큼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커진다면 그 보다 나은 독서의 진가가 어디 있겠는가. 덜 불온한 여성일수록 더 상처받는다. 상처 많은 여성들이 한 권의 책에서 힘을 얻는다면 이 또한 독서의 효용이 아니겠는가. 과감하고 불온한 독서일수록 그 파장은 크고 깊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