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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탈북자들의 슬픈 이야기

등록일 2012-10-08 20:55 게재일 2012-10-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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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북한 김정은 체제 등장이후에도 탈북 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중국이나 제 3국을 거쳐 이 땅에 입국한 탈북자가 현재 2만4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들 중 전 가족이 동반하여 탈북한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 북녘 땅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이다. 지난 10여 년 간 북한을 탈출해 이 땅에 정착한 이들은 6·25 전후 남하한 실향민에 비하면 수적으로는 적지만 또 다른 실향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나 아내, 부모 자식을 북에 두고 자유를 찾아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입국한 이들도 지난 추석은 이산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저런 사연으로 탈북자들과 인연을 맺어 온지 오래다. 함북 무산출신으로 부모를 북에 두고 단신 탈 북한 청년 J군, 회령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다 남으로 와서는 식당일을 하는 K여인도 있다. 그녀는 탈북과정에서 중국에서 얻은 한족 아이 때문에 직장 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힘겨워 하고 있다. 북한에서 대학 교수생활을 하다 탈북한 C씨는 박사 학위를 취득해 취업한, 운이 좋은 경우다. 그러나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이곳에서 정착에 어려움을 격고 있다. 얼마 전 이들을 만나 생활이 어렵지 않느냐는 나의 위로에 그들은 `일 없습네다`라고 거의 비슷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가에는 이 땅에서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10여년 전 일찍 탈북해 이 땅에서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고, 국회의원이 된 조명철 의원처럼 명성을 얻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땅의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무척 힘들고 지쳐 있다. 상당수 탈북자들은 일정한 직업없이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취직한 경우도 130만원 내외의 단순 일용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을 통해 북의 가족까지 돕고 있다. 북한의 명문 김책 종합 대학 출신의 어느 탈북자는 남한 사회에 적응이 안돼 미국으로 이민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최근 이들 탈북자에 대한 생활만족도 조사에서는 80%이상이 남한의 생활에 `대체로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통제사회인 북한의 집단주의적 가치가 아직도 그들의 몸에 남아있어 개인적인 불만을 외부로 토로하지 않는 습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하곤 한다. 아침 지하철 타기부터 경쟁으로 시작해 경쟁으로 끝나는 남한 사회, 동족임에도 동남아 이주민처럼 취급하는 비정한 남한 사회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 중엔 남한사람들의 냉대와 차별에 분노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탈선과 범죄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들의 이러한 불만족의 배경에는 남한 사람들의 탈북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탈북자 중에는 남쪽의 북쪽 사람들에 대한 편견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심지어 자유를 찾아온 탈북자를 위장 간첩이 아닌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영업용 택시에서 탈북 주민이라고 무심코 말했더니 바가지요금까지 쓴 적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어느 탈북자는 북한에 가족이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더니 북한의 가족에 대한 배신이 아니냐고 아픈 가슴을 찢어놓더라고도 했다.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정착하는 것은 통일 국가의 장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다. 탈북자들에 대한 정부의 중장기적인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적인 정착은 결코 정부의 몫만은 아니다. 시민 사회의 따뜻한 시선과 손길이 우선돼야 한다. 물론 북한이탈 주민들의 적응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2만 4천명의 탈북자들에게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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