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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춧구멍에 들꽃을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2-09-27 21:02 게재일 2012-09-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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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생겨 먹어서 사람들과 충돌만 일삼는 거지? 왜 선생님과 사이는 좋지 못하지? 왜 급우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서먹서먹하기만 하지? 왜 선생님들 하는 짓이 다 우스꽝스럽게만 보이지? 왜 얌전한 모범생이 되지 못하고 시 나부랭이나 끼적이다가 놀림감만 되지?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청소년기는 저런 생각으로 가득 찼으리라. 그의 중편 소설`토니오 크뢰거`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내밀한 고백으로 가득하다. 그 은밀한 고백 밑바탕에는 평범한 시민성과 예술가적 기질 사이의 고뇌가 숨어 있다. 토니오는 기본적으로 아웃사이더인데다 깊이 보고 자세히 본다.

동급생 미소년 한스를 해바라기하지만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라는 가혹한 교훈을 얻을 뿐이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소녀 잉에를 맘에 품지만 상대는 악의 없이 무심할 뿐이다. 평온하고 건전한 시민을 대표하는 한스나 잉에는 예술가적 기질로 길 잃은 시민이 되어버린 토니오와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겨우 열네 살에 토니오는 자신의 길이 평범한 시민성과는 다르다는 것을 자각한다.

정돈되고 명상적인 부르주아 아버지와, 자유롭고 정열적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운명적으로 시민 계급과 예술가적 기질 사이에 방황할 수밖에 없는 토니오 크뢰거. 그는 두 세계 중 어느 곳에도 안주할 수 없다. 예술가 그룹에서는 경멸과 환멸을, 시민 계급에서는 굴욕과 패배감을 맛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부러워해 마지않던 시민성을 경외와 긍정의 시선으로 수용한다. 시민 계급의 밝음을 사랑하고 질투하는, 인간적인 예술가가 되겠다고 고백한다.

토니오 크뢰거는 조금은 평범하지 않다고 믿는 우리들 자화상이다. 단춧구멍에 들꽃을 꽂은 채 단정히 책을 읽는 아버지와, 만돌린을 들고 거리의 악사로 나서는 집시 풍의 엄마가 공존하는 게 고뇌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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