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제 참석용으로 급히 산 그 한복은 이백만 원이 훨씬 넘는데다, 구겨 신은 운동화 역시 스페인 산 유명브랜드로 삼십 만원이 넘는단다. 일견 남루해 뵈는 그의 패션 감각을 동정했던 사람들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전 패션이야말로 김기덕을 더욱 김기덕답게 표현했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제는 다가오고 옷은 적당히 입어야겠고, 아무데나 들른 곳이 고가의 옷집이었을 뿐이라고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말한 바 있다. 신발까지 갖춰 신는 게 귀찮아, 이미 내 몸이 된 것 같은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갔을 지도 모른다.
`예술가란 언제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기 귀에 들려오는 것을 마음 한 구석에 솔직하게 적어놓는 열성적인 노동자다`라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다. 이 말을 김기덕 감독에게도 빗대볼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 일관되게 자신에게 귀 기울였으며, 그 마음 한 쪽을 솔직하게 스크린에다 담은 열성적 노동자였다. 그런 사람에게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예술은 누가 뭐래도 사기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사기를 쳐서라도 희망 또는 진실에 이르고 싶은 것이다. 그 노정에 편하게 구겨진 신발 한 켤레쯤 있어야 되는 건 당연하다. 감독도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술가에게도 각자의 영역이 있다. 깨끗하고 반듯한 구두를 신고 시상대에 오를 사람은 많다. 김기덕은 뒤축 접힌 낡은 운동화를 신을 때 제격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