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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과 북한 여성 안내원에 대한 추억

등록일 2012-06-04 21:26 게재일 2012-06-0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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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경북대 명예 교수·정치학
남북 대화와 교류가 원활하던 시기 나는 북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다. 북한 땅과 중국 때로는 멀리 독일에서 까지 남·북 학술 교류 협력이라는 목적으로 이들과의 만남은 계속됐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경색돼 교류와 협력이 거의 단절된 상태이다. 내가 만났던 북한 땅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북한의 학자, 당 관료, 안내원등 그들과의 만남의 추억은 아직 까지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북한에 관해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직접적인 연구대상인 그들과의 첫 만남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책과 논문을 통해 나름대로 북한 주민들을 이해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들과의 직접적 대면을 귀중한 연구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주민 접촉이 엄격히 금지된 상황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사회과학적 연구 대상인 북측사람에 대한 만남을 앞두고 나는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기대와 환상이 교체됐다. 여러 차례 그들과의 공식적 비공식적 만남과 대화, 만찬시의 동행, 술자리 등은 그들의 사고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사실 그들과의 여러 차례의 접촉은 나의 북한에 대한 환상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고 소위 나의 `질적 연구`에도 많은 보탬이 됐다.

나의 첫 번째 북한 주민과의 접촉은 10여 년 전 5월의 금강산 회합에서 이뤄졌다. 나는 전국 국공립대학 교수회 대표자격으로 60여명의 교수들과 함께 금강산 회합에 참여했다. 다음날 금강산 관광길에 나섰던 나는 그 때 나를 안내한 금강산 관광 안내원과의 대화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원산의 어느 중학교 여교사 출신 안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당시만 해도 관광 중 쓰레기 버리다 적발되면 100불 벌금, 김일성 부자 모독에 대해서는 억류되던 시절이라 우리는 무척 조심하면서 그의 안내를 받았다. 그녀는 인상이 무척 부드러운 30대 초반의 미인형의 안내원으로 기억된다. 그는 남한에는 몇 개 대학이 있는지, 남한의 제주도를 가 보았는지 등 일상적인 질문까지 하면서 의외로 친절하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금강산 초입을 지나 조용한 계곡으로 들어서는데 그는 느닷없이 남한의 박모 정치인이 왜 구속됐는지를 물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특사 자격으로 대통령을 수행하여 평양을 다녀왔으며 현재도 고위직 국회의원이다. 그가 대북 송금 등 남한의 실정법 위반으로 구속됐다고 알려 줬더니 `통일 사업`을 그토록 열심히 한 사람을 구속하면 되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단순한 관광 안내원이기 보다는 교사출신의 당의 핵심 일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강산 만물상으로 접어드는 경관이 좋은 널찍한 바위에는 어느 곳이나 붉은 페인트로 수령의 위대성을 소개하는 글귀가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김일성이 금강산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서슴지 않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1990년에 손수 이곳을 찾으시고 한 번 더 이곳을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만 서거하셨다”고 목소리까지 약간 떨렸다. 그는 이어서 “장군님이 돌아가시고 이곳 산천도 슬퍼서 저곳 `감로수` 약수탕의 물까지 말라 버렸는데 애도기간이 끝나고 물이 다시 나왔다”는 이상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의 왼쪽 가슴에 달린 붉은 바탕의 김일성 배지가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금강산 안내원의 이러한 표현이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완전히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 후 북한의 학자, 관료, 예술인 등 여러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거의 비슷한 말을 하는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김일성, 김정일 사후 북한 주민들의 울부짖는 모습은 `수령절대 옹위` 정신을 모르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북한 체제의 변화 즉 개혁과 개방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의식변화 없이는 북한 체제의 급속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에도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가 감지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탈북자의 행렬이 생존을 위한 그들의 의식의 변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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