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샌프란시스코 방문길이었다. 도로변 아파트 창틀에 무지개 모양의 깃발이 여기저기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어느 회사 선전물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해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동성 결혼자의 아파트 표시란다. 더욱 놀란 것은 당시 이곳 시장도 동성연애자라고 해 어안이 벙벙했다. 그날 오후 그 도시 중앙 광장에서는 이들의 집회가 요란하게 전개돼 잠시 구경한 적이 있다.
독일 여행 중 독일 본의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입구가 매우 시끌벅적했다. 호텔 지하의 가장 큰 홀에서 동성애자의 파티가 열리기 때문이란다. 파티장의 출입은 미리 예약해야 할뿐 아니라 파트너 없이는 출입이 엄격히 제한돼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 이 분야 연구(?) 교수라는 핑계로 들어가 이 행사를 멀리서 나마 볼 수 있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동성 결혼의 합법화를 지지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그는 동성 결혼을 공식 지지한 미국의 첫 대통령이 됐다. 오바마의 이번 선언으로 미국의 동성결혼의 합법화는 여러 개 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로서는 오바마의 이 같은 선언이 기상천외한 일로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동성결혼(same-sex marrige)이 합법화된 나라가 상당수다.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노르웨이, 캐나다, 남아공 6개국은 이미 합법화됐고, 스웨덴, 덴마크, 아르헨티나는 사실혼관계가 입증되면 동성혼을 인정하는 경향이다. 동성혼의 합법화는 혼인의 당사가 법의 보호를 받음으로서 사실상 인정하거나 묵인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대체로 선진화된 서구 복지국가에서 합법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오바마가 이번 동성혼의 합법화를 지지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여론을 중시하는 미국사회에서 11월 대선에서의 승리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미국에서 동성애자는 성인인구의 1.7%인 약 400만명이 넘고, 동성 커플은 이미 약 65만쌍인 130만명에 이른다. 워싱턴 포스트의 2012년 5월의 여론 조사는 동성혼에 대해 52%의 찬성과 43%의 반대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의 무당파 지지자의 57%, 특히 18~29세 청년 유권자 71%가 동성혼을 지지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 동성애자 대부분이 고학력, 전문직, 백인 엘리트들이고 연봉도 8만불을 상회하는 고소득층이 많다. 이들의 시장 구매력이 2조달러로 추산되고, 이들의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정치권의 로비도 만만치 않다. 즉 이들은 상당한 정치 후원금을 마련하여 동성혼의 합법화와 동성애자들의 보호를 위해 쓰고 있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과 오바마는 11월 선거를 앞두고 소위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는 물론 젊은 층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이러한 선언을 과감히 한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이번 동성혼 선언이 11월 대선에 반드시 유리하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여론은 동성혼에 대하여 반드시 우호적인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국 30개주가 동성 결혼을 반대하고, 13개주가 사실상 인정 등 논의 중이며, 7개주만 합법화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적인 여론과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도 동성혼을 반대하고 있다. 전통적인 오바마 지지층인 흑인 중에도 동성혼을 반대해 공화당 지지로 돌아 서고 있어 오바마는 얻는 것 이상으로 잃는 것도 많은 것 같다. 특히 미국의 가톨릭을 중심으로 한 보수적인 크리스천들도 가족제도와 윤리관의 파괴문제로 이를 적극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결혼은 개인의 자유이므로 이를 국가가 제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인권의 침해라고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동성결혼은 근본적으로 인륜이나 결혼 윤리에 반하는 개념이다. 동성결혼은 혼인의 순결과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라는 결혼의 보편적 도덕 율에 크게 이탈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자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활동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서구 문물을 좋아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서구의 이상한 `돌출 문화`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을까 두렵다. 미국의 11월 대선의 승리를 위해 결혼에 대한 기본 윤리마저 방기하려는 `미국식 민주정치`를 보면서 서글퍼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