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요즘은 한 집 건너 커피전문점이 생길 정도다. 점심시간이면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커피 한 잔 마시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다.. 커피가 아예 국민음료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국민음료는 숭늉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꽃피운 차(茶)문화가 한국에 없는 것은 숭늉 때문이다. 지금은 식사 후 디저트로 커피나 차를 마시거나 과일을 먹지만 예전에는 숭늉을 마셔야 식사를 끝낸 것으로 여겼다. 숭늉을 마시지 않으면 속이 매스껍고 더부럭하다며 먹은 음식마저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 한국인이 숭늉을 마신 역사는 그 뿌리가 깊다. 12세기 초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갔던 서긍이라는 사람이 `고려도경`이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서 고려사람들이 숭늉을 갖고 다니면서 마신다며 신기하게 여겼다. 고려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물그릇은 숭늉그릇이다. 나라의 관리나 귀족들은 언제나 시중드는 사람을 시켜 숭늉그릇을 들고 따라다니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숭늉을 마셨으니 요즘 사람들이 카페인에 인이 박힌 것처럼 옛날 선조들은 아마 숭늉에 중독이 됐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사신으로 중국을 갔던 사람들이 현지에서 숭늉을 마시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 기록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청나라를 다녀온 김창업은 `연행일기`에서 식사후 숭늉을 구해 마시고 속이 편했다는 기록도 있다. 숭늉은 음료수 뿐만 아니라 소화제 역할도 한다. 신토불이란 말처럼 한식을 먹고 난 뒤에는 우리 음식과 맞는 숭늉 한 그릇이 뒷맛을 개운하게 해주는 약이다. 우리 조상들은 오랜 세월 숭늉을 고집하며 살았고 후손인 우리는 커피에 더 길들여져 있다. 세월이 변하니 입맛도 거기에 맞춰 변하고 있다.
/손경호(수필가)